수렴청정 4년 끝낸 푸틴…'차르의 귀환'
러시아 대통령 선거가 4일 치러진다. 집권 여당인 러시아통합당 후보로 나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60)의 당선이 거의 확실하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지난달 모스크바에서 10만명의 군중이 모여 반(反) 푸틴 시위를 벌였지만 선거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푸틴이 집권하면 2000년부터 18년간 통치하는 게 된다. ‘차르(옛 러시아 황제)’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외신들은 푸틴이 비록 당선되더라도 정치적 불안 속에서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장기 집권이 국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혼란이 극심해질 것”이라며 “푸틴이 당선된다 해도 그의 시대는 종말을 향해 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18년간 이어지는 ‘차르 푸틴’의 시대

수렴청정 4년 끝낸 푸틴…'차르의 귀환'
푸틴의 인기는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여론조사에선 60%의 지지율로 독보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유는 경합을 벌일 만한 인물이 없다는 데 있다.

제1야당인 공산당의 겐나디 주가노프 후보 등 4명의 야권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10% 안팎에 그친다. 경쟁력 있는 후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출마가 사실상 차단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자유주의 개혁성향 야당인 야블로코당 후보 그리고리 야블린스키에 대해 “추천서명 25% 이상이 가짜”라며 등록을 거부했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연임에 성공했다. 3연임을 금지한 헌법에 따라 2008년 3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총리를 지냈다. 하지만 존 베일리 전 주러시아 미국 대사가 “푸틴은 배트맨, 메드베데프는 로빈(배트맨의 조수)”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실질적인 권력을 휘둘렀다. 그는 헌법 개정으로 6년으로 늘어난 대통령직을 또 맡으면 총 18년간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경기 악화가 민심 이반 가속화시킬 듯

푸틴이 2004년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러시아의 경제호황 덕분이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아지며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수출이 늘어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최대 호황을 누렸다. 푸틴 측근인 올리가르히(러시아 재벌)들이 에너지 및 금융산업을 독점해 각종 부패 스캔들이 터졌지만 호황 속에 큰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4.3%보다 낮아진 3.3%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푸틴은 “2020년까지 평균 임금을 현재의 1.6~1.7배인 4만루블(150만원)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지만 현재 러시아의 경제 상황을 봤을 때 이것이 지켜질 것이라 믿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푸틴이 지난해 9월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최악의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경기 불황이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켜 예전처럼 강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고, 과거 그의 업적마저 훼손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은 2일 독일 일간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12년간 수행할 수 있다”며 2018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가디언은 “그가 차기 대선에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