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실한 경제모델 바탕 영향력 확대

최근 재정위기에 따른 반정부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때아닌 독일 나치 군복이 등장했다.

심각한 재정적자로 인한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독일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을 자조하면서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의 악몽 재현을 경계한 시위대의 퍼포먼스다.

또 지난해 폴란드 대선에서는 독일이 다시 제국 건설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는 선거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지난 수십년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낮추고 자금공급원의 역할만을 해온 독일이 최근 유럽의 `맹주'로 부상하려는 조짐에 다른 국가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해 독일의 경제규모는 3조달러 수준으로 영국이나 프랑스의 2배 수준이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 위기 국가들에 대한 구제자금 지원액도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많았다.

독일의 영향력 확대를 걱정하면서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은 유럽을 구제할 수 있는 나라는 독일이 거의 유일하다는 게 현실적인 `딜레마'인 셈이다.

이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국'이라는 비난을 피해 정치보다는 경제에 치중하면서 건실한 경제모델을 구축한 데 따른 것이지만 이웃국가들로서는 독일의 부상을 지켜보면서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독일 내부에서도 이웃국가들의 이런 경계론을 의식하고 있다.

최근 잇단 국제회의에서 이런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기울이고 있으나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이에 대해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은 "리더십이 궁지에 빠졌다"면서 "독일이 움직이면 지배할 것을 걱정하고, 움직이지 않으면 유럽에서 철수할 것을 걱정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베르너 호이어 외무차관은 "모두 리더십을 원하지만 누구도 끌려가고 싶어하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이승관 특파원 huma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