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자도 수천명 추정..여론 향배따라 분수령될 듯
국제사회, 개혁과 자제 촉구..경제손실 불가피

이집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로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시위 발생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내각 해산과 정치개혁을 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은 시위대가 요구하는 하야의 뜻을 밝히지는 않아 성난 민심은 여전한 상황이어서 정국의 안정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도자들도 양측에 개혁과 자제를 촉구했다.

◇ 내각 해산 승부수 = 무바라크 대통령은 29일 새벽 공개석상에 등장, 내각 해산과 정치개혁을 천명하며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국영 TV를 통해 중계된 연설에서 "내각에 오늘 사퇴를 발표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29일 중으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그는 이번 시위를 계기로 사회, 경제, 정치적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실업과 빈곤, 부패와 싸우고 주민들의 소득수준을 높이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사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대화라고 강조하면서도 시위대에 대한 경찰과 군 당국의 진압 조치를 옹호해 성난 민심을 자극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TV 연설 직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약 30분간 전화통화를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앞서 이집트 정부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을 가택연금하고 인터넷을 차단하는 등 강경대응했다.

◇ "하야없이 진압 정당화" 불만 = 이날 새벽에 이뤄진 TV 연설을 지켜보던 시위대는 대통령이 하야하기는커녕 대규모 사상자를 초래한 폭력 진압을 정당화했다면서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시위에 가담했던 카말 모함마드는 "무바라크의 퇴진을 원하며 그렇지 않으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질 것"이라면서 "그는 사태가 누그러질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폭력진압 정당화는 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의 무력진압과 통행금지 탓에 밤이 되면서 일부 해산했던 시위대는 TV 연설이 끝난 뒤 다시 카이로 시내 중심인 알-타흐리르 광장 등 주요 시위지역으로 다시 집결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 직전인 28일 밤에 이 광장은 탱크와 장갑차 등 20여대의 군용차량이 진입, 군당국의 통제 아래로 들어갔으나 시위대가 몰리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시위대는 국민들은 정권 교체를 원한다고 외치며 무바라크 대통령의 응급처방에 만족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수만명 시위..희생자 속출 = 반정부 시위 나흘째인 28일에는 카이로 외에도 수에즈와 만수르를 비롯한 나일 삼각주의 주요 도시, 알렉산드리아, 아스완, 민야 등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카이로 시민들은 이날 정오 금요 기도회를 마친 직후 거리로 쏟아져 나와 30년간 장기 집권한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격렬하게 시위했다.

이집트 보안당국은 무장 경찰들을 시내 주요 지역에 배치해 시위대에 최루탄과 물대포, 고무총탄을 발사하며 강제 해산을 시도했으나 시위대의 저항이 거세 양측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카이로 일원에 탱크가 진입하는 등 군부대가 투입됐으며 탱크에 올라탄 시위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군이 발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알 자지라 방송 등 현지 언론이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전국적인 시위 과정에서 최소 26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과 목격자에 따르면 수에즈에서만 13명이 숨졌고 카이로에서 최소 5명, 나일 삼각주의 도시 만수라에서 2명, 알렉산드리아에서 6명이 각각 사망했다.

카이로에서만 1천30여명이 부상했고 수에즈에서도 75명의 부상자가 발생, 전국적으로는 수천명의 부상자가 속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미국 등 국제사회, 개혁과 자제 촉구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8일(현지시각)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에게 반정부 소요사태 해결을 위한 정치개혁 절차를 구체적으로 밟으라고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국영TV를 통해 내각 해산과 사회ㆍ경제ㆍ정치개혁 추진을 발표한 뒤 그와 30분간 전화통화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앞서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은 이집트 경찰과 군병력이 시위대를 상대로 무력을 사용한 점에 관해 깊이 우려하며, 이집트 정부가 군을 억제하는 데 모든 힘을 동원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이집트에 대한 원조 정책을 재검토할 것이라며 이집트를 압박했다.

미국은 2010회계연도에 이집트에 13억달러의 군사원조와 2억5천만달러의 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캐서린 애슈턴 유럽연합(EU)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성명에서 이집트 정부가 연행한 시위대를 즉각 석방하고 민주화를 향한 자국민의 열망에 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보스포럼 참석 중인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이집트에 필요한 것은 개혁"이라며 "이집트의 민주주의와 시민권, 법치 측면에서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으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집트 정부의 인터넷과 휴대전화 차단 조처에 대해 "표현과 결사의 자유는 전적으로 존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경제손실 불가피 = 이집트는 국가적인 위기상황 탓에 대규모 경제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28일(현지시간) 시위 사태로 정정불안이 가속화하고 있는 이집트의 신용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한단계 내렸다고 밝혔다.

이집트 증시 역시 시위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집트의 EGX30 지수는 26일 6% 떨어진 데 이어 27일에는 10.5% 폭락했다.

아울러 이집트를 오가는 전 세계 항공사들의 항공편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지연돼 하늘길에도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다.

이집트의 국영항공사는 최소 12시간 이상 운항을 중단했고 브리티시 에어라인 등 유럽의 주요항공사와 델타항공 등 미국의 주요항공사들도 이집트행 항공편 운항을 잠정 중단했다.

각국의 이집트에 대한 여행 제한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자국민에게 이집트 여행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이미 이집트에 있는 미국인들은 국내여행을 자제하고 주의해 달라고 촉구했다.

호주 역시 튀니지 및 레바논과 같은 등급인 경고로 여행경보를 상향조정, 사실상 이집트 여행을 제한하고 나섰다.

정국 불안이 계속될 경우 주요국가들의 여행경보가 잇따를 것으로 보여 관광이 주요 소득원 중 하나인 이집트의 경제에도 큰 타격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번 사태는 이집트 외에도 뉴욕증시와 국제유가 등 전세계 경제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김영묵 특파원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