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지지하나 전체 참여국 입장 고려하는 듯
외교 소식통 "끝내 공식입장 안 밝힐 수도"

중국이 연평도 포격 사건을 포함한 한반도 위기상황을 논의하자며 제안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긴급 협의에 대해 회담 참가국인 미국, 일본, 한국 등이 부정적 입장을 밝힌 가운데 러시아가 계속 침묵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내심 중국의 제안을 지지하지만 한국과 중국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스크바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와 관련 러시아가 '웅변 대신 침묵'을 택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끝내 공식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28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를 처음 제안한 중국은 30일 재차 관련 당사국들에 제안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을 처음부터 비난하고 나섰던 러시아는 중국 측 제안에 대해 30일 현재 아무런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러시아 외교부 공보실 관계자는 이날 러시아의 입장을 확인해 달라는 연합뉴스의 요청에 "심각한 사안이라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지도부가 현재 계속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언제 러시아가 입장을 밝힐 지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외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이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남북한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과의 관계는 물론 그동안 자신들이 견지해온 대화와 외교적 협상을 통한 한반도 사태 해결 주장을 함께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으로 관측하고 있다.

러시아는 그동안 중국과 함께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 무력시위를 자제하고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위해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북한의 핵개발 포기 약속 이행을 앞세우며 6자회담 재개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한국, 미국, 일본 등과 달리 중국과 같은 입장을 취해 온 것이다.

여기에 그동안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공조해온 러시아로서 중국 측의 거듭된 제안을 묵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 외교부가 30일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알렉세이 보로다브킨 러 외무차관은 29일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남북한 관계에서의 모든 논쟁적 문제를 오로지 평화적이고 정치.외교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내부적으로 중국 측의 제안을 지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모스크바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일단 내부적으로 러시아는 중국 측의 6자회담 제안에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그 증거로 앞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이 27일 양제츠 (楊潔지<兼대신虎들어간簾>) 중국 외교부장과 나눈 전화통화 내용을 들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관련 당사국이 남북한 간의 대화를 촉구하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환경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호소한 양 외교부장의 제안에 대해 "러시아는 중국의 입장에 동의하며, 한반도 긴장 해소와 6자회담 재개를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해 중국 측과 긴밀한 접촉과 조율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도 있다.

러시아는 연평도 포격 사건 당일인 23일 이례적으로 신속히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공격을 비난하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뒤이어 29일 이윤호 주러 한국대사를 만난 보로다브킨 러 외무차관도 "인명 피해를 야기한 북한의 한국 영토 포격은 비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선 한국과 미국, 일본 등과 같은 편에 선 것이다.

이런 마당에 한.미.일이 반대하는 6자회담 대표 회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최근 들어 대통령 상호 방문 등으로 특별히 관계가 진전된 한국의 입장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윤호 주러 한국대사는 29일 보로다브킨 러 차관과의 면담에서 (6자회담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한국 측의 입장을 설명하고 러시아가 신중하게 대응해 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에 대해 입장 발표를 미루고 있는 배경에는 이처럼 복잡한 상황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모스크바의 고위 외교 소식통은 "러시아가 '웅변 대신 침묵'을 택해 이 문제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끝내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식 입장을 밝힐 경우 어차피 어느 한 쪽을 편드는 꼴이 되는 곤란함을 피하기 위해 천안함 사건 자체 조사 결과를 밝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차라리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