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현금 홍수에 빠졌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로이터통신은 애플이 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맥컴퓨터를 판매해 그동안 누적한 '현금'(현금성 자산과 각종 장 · 단기 투자증권 포함)이 지난 6월 말 현재 458억달러에 달한다고 3일 보도했다. 이는 애플 시가총액의 약 5분의 1에 이르며 마이크로소프트(370억달러),인텔(180억달러)보다 훨씬 많은 규모다.

앤디 하그리브즈 퍼시픽크레스트증권애널리스트는 "이런 기조라면 애플의 보유 현금은 내년 회계연도 말(2011년 9월 말) 65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애플이 많은 현금을 보유하게 된 것은 다각도로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금 자산에 붙는 각종 이자와 투자이익률이 2007회계연도 5.27%에서 2008년 3.44%,2009년 1.43%,지난 6월 0.76%로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애플은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주주들에게 후한 배당금도 주지 않았다. 1995년 이후부터는 배당금 지급을 중단했다. 또 IBM이나 시스코와 같이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관리하지도 않는다. 자사주를 매입한 것은 2001년이 마지막이었으나 2007년 이후 애플 주가는 3배나 뛰었다. 보유 현금의 절반 이상인 320억달러를 일시에 배당금으로 풀었던 2004년 당시의 주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대조된다. 애플은 휴렛팩커드나 오라클처럼 다른 기업을 인수 · 합병(M&A)한 실적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애플이 다른 기업에 비해 연구 · 개발(R&D)비 비중이 높거나 임직원들에게 거액 연봉을 주지도 않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3분기 애플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3%로,9%에 육박하는 마이크로소프트보다 낮다. 제품 포트폴리오가 협소한 탓이다. 애플에서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담당 기술자의 연봉은 약 10만달러로 구글 직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나마 애플이 크게 투자한 부문은 10억달러를 들여 연말까지 노스캐롤라이나에 완공할 예정인 데이터센터 정도다.

로이터는 애플의 현금 보유 현상과 관련,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피터 오펜하이머 최고재무관리자(CFO)의 '편집광적 전략'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애플은 과거 아픈 기억이 있다. 오펜하이머가 1996년 애플에 합류했을 때 애플 주가는 5달러 아래로 고꾸라졌다. 이후 잡스가 애플을 다시 경영하면서 맨 먼저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5000만달러를 투자받은 일은 굴욕에 가깝다.

업계는 어느 시점에서든 애플의 전략이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잡스도 "필요할 경우 뭔가 크고 과감한(big and bold)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