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시장 개입을 강화한 미국의 금융개혁법안이 15일(현지시간) 마지막 관문인 상원을 통과했다. 다음 주 중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하면 법률로서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대공황 이후 가장 강도 높은 규제를 담고 있는 금융개혁법안이 의결됨에 따라 월가 금융사의 영업 관행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법안 통과가 지난해 경기부양법안,올초의 건강보험 개혁에 이은 오바마 대통령의 또 하나의 정치적 승리라고 평가했다.

미 상원은 이날 표결에서 찬성 60 대 반대 39로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 55명에,무소속 2명과 공화당 의원 3명을 찬성 쪽으로 끌어들여 공화당의 합법적 의사진행방해(필리버스터)를 무산시킬 수 있었다.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는 60명의 찬성표를 얻기 위해 민주당은 법안의 일부 규제 수위를 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기 막는데 초점 맞춰져

이 법안은 2008년 발생한 금융시스템 위기 재발을 막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재무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각종 감독기관장 10명으로 구성된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는 은행이 보유해야 할 자본 규모를 결정하고 파산 위기에 처한 대형 금융사의 청산 기준을 마련하게 된다. 부실 대형 금융사를 퇴출시키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함으로써 '대마불사'논리를 불식시키려는 취지가 깔려 있다.

투기적 매매를 통해 단기 순익을 좇는 수단으로 활용됐던 월가 대형 은행들의 자기자본 투자가 제한되고,헤지펀드 소유도 규제를 받게 된다. 당초 예상보다 약화되긴 했지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혀 온 파생상품에도 규제가 도입됐다. 금리 · 외환과 관련된 거래 외에는 별도 법인을 통해 파생상품 거래를 하도록 규정했다.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파생상품은 청산소와 거래소를 통해 매매하도록 했다.

논란 끝에 FRB의 역할은 한층 강화됐다. 전체 금융 시스템에 위협을 주는 대형 금융사를 분할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데다 은행 외에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과 같은 금융사에도 자본과 유동성 확충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됐다. 또 대형 헤지펀드를 감독할 수 있는 권한도 확보했다. 권한이 커진 만큼 또 다른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책임을 벗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규제가 도입되면 금융사들이 이를 회피하는 방법을 곧바로 찾는 만큼 금융 개혁안이 도입돼도 또다른 금융위기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이를 위해 FRB에 소비자 보호기구를 설치,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신용카드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상품의 불공정 수수료나 고금리 관행을 바로잡게 된다.

◆월가 대형은행들 대책마련에 돌입

금융개혁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이 법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소비자금융 보호 조치들을 담고 있다"며 "국민들이 월가의 실수로 인한 비용 부담을 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 마련을 주도한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장도 "금융사들에 대한 규제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며 "월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경제를 성장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건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공화당은 이번 법안이 신용카드 및 은행산업을 압박해 경기회복을 저해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마크 잔디 무디스이코노미닷컴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조치로 기업에 대한 신용공여가 800억달러가량 감소하고 10년에 걸쳐 650억달러의 생산 감소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안 통과로 인한 영업 관행 변화로 수익성 하락이 불가피해진 월가 대형 은행들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3월 말 현재 2조3400억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거래 서비스 관련 수익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잔액이 일정 규모 이하인 계좌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씨티은행은 이번 금융 규제로 BOA의 수익이 11%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JP모건체이스 등은 자기자본 거래와 헤지펀드 투자 규제로 인한 수익 감소가 예상된다.

하지만 월가 금융사들은 수익 감소 예상에도 불구하고 기존 사업을 대부분 유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은행과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위험을 줄여왔던 항공사와 식품회사,석유시추회사는 거래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은행들이 규제 강화로 늘어난 파생상품 거래 비용을 기업에 전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