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없는 핵테러 차단 공동선언으로 주도권 모색
구체적 실행계획 도출 관건..여전히 갈길 멀어

지난 1997년 개봉된 영화 `피스메이커'는 핵테러리즘을 잘 묘사한 영화로 꼽힌다.

구 유고 출신의 테러리스트가 러시아 핵무기를 절취, 핵폭탄을 배낭에 짊어지고 뉴욕 유엔본부를 향해 핵테러를 시도하는 내용이다.

영화는 뉴욕 도심의 긴박한 추격전끝에 조지 클루니와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은 백악관 핵무기 단속반 책임자와 특수요원에 의해 결국 핵테러는 저지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9.11 테러 이전에 제작됐지만 뉴욕을 배경으로 한 대규모 테러시도를 주제로 했기 때문에 마치 9.11 테러를 예견하는 영화 같았다.

9.11 테러는 3천여명의 인명이 희생됐지만 `피스메이커' 영화 같은 핵무기 자살테러, `더티밤'(dirty bomb.방사능 물질과 고폭이 결합된 무기로 대량살상무기로 분류)으로 공격이 감행될 경우 대도시 하나가 날아가게 된다.

◇`피스메이커' 현실화 차단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12일 개막된 핵안보정상회의는 `피스메이커'의 시나리오처럼 테러리스트가 핵물질을 훔치거나 제공받아 공격하는 핵테러를 방지하는데 초점을 둔 다자 정상회의이다.

`피스메이커'의 시나리오는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냉전 종식 이후 핵무기 관리가 느슨해지면서 영화와 같은 핵무기 이전이나 핵무기 탈취 시도는 더러 있었다.

지난 2007년 남아공에서는 10여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이 보관돼 있던 설비에서 무장괴한 4명의 탈취 시도가 있었다.

무장괴한들은 1만볼트의 고압 펜스를 뚫고 방호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통제실까지 침입했으나 결국 고농축우라늄 탈취에는 실패했다.

미국은 과거 냉전 시대처럼 소련과 같은 특정 국가의 핵무기 공격 가능성보다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핵테러리즘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합의 쉬운 핵테러 방지에 초점 = 오바마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 회의의 핵심 초점은 단기적은 물론 중.장기적으로도 미국 안보의 유일한 최대 위협은 테러리스트 조직이 핵무기를 획득할 가능성이라는 사실"이라고 어젠다를 분명히 밝혔다.

핵무기를 어떻게 감축할 것이냐, 과거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원자로 사고 를 어떻게 차단할 것이냐, 북한, 이란처럼 핵보유국이 되려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이냐 등의 문제들도 핵안보를 위한 이슈들이다.

하지만 이번 핵안보정상회의의 어젠다는 테러리스트들의 수중에 핵무기나 핵물질이 넘어가는 것을 차단하는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게 미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어젠다이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 우리는 현재의 핵물질(existing nuclear material)을 방호하는데 초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2일 전했다.

`새로운' 무기급 핵물질 생산을 차단하는 문제는 나라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핵감축, 핵비확산, 비핵지대 문제 등 다소 복잡한 문제로 얽혀들어가기 때문에 연관은 있지만 이번 회의의 초점은 아니라는게 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이번 회의는 47개국 정상이 참석해 지난 194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연합 창설회의 이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정상들이 모인 회의이지만, `핵테러리스트로의 핵무기 이전을 막자'는 공감대가 큰 주제에 대한 합의는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수십개국 정상들의 `최대공약수'를 바탕으로 합의를 도출,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꿈 실현을 위해 차근차근 다가간다는 게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이다.

◇구체적 `실행계획' 담보 관건 = 게리 세이모어 미 백악관 대량살상무기(WMD) 정책조정관은 지난 9일 브리핑에서 "핵폭탄에 사용되는 추출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비국가행위자의 수중에 들어갈 수 없게 차단하면 핵테러의 위험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1997년 남아공 사건의 예처럼 핵물질이 탈취되거나 이전되는 일이 없도록 전세계의 모든 핵물질 관리시설에서 방호망을 물샐틈없이 강화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공동 정상선언과 실행계획(work plan)도 도출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얼마나 실행력이 담보되는 구체적인 실?계획이 나오느냐가 이번 회의의 목표인 핵 방호의 성공 여부를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방호체계가 취약한 핵물질 보유국가들에 대한 자금 지원도 관건이다.

◇갈 길 먼 핵안보체제 구축 = 이번 회의는 논란이 없고 합의 도출이 쉬운 핵테러 방지라는 어젠다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한계가 있고, 여전히 핵안보 체제구축을 위한 갈 길은 멀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회의가 새로운 핵물질 생산 시도에 대해서는 적극 대처하지 않는 등 `구멍'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오바마 대통령이 전날 만모한 싱 인도 총리, 유수프 라자 길라니 파키스탄 총리와 연쇄 양자 정상회담을 가졌지만, 최근 새로 문제가 불거진 양국의 핵물질 생산 문제는 일부러 양자 회담 어젠다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지적했다.

미 행정부 당국자는 인도-파키스탄 무기 경쟁을 각각의 양자회담 어젠다로 올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너무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미국내 보수진영에서는 딕 체니 전 부통령처럼 이번 회의는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혹평하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네오콘의 대표주자인 존 볼턴 전 유엔대사는 "느슨한 핵물질 방호의 강화는 중요한 문제로 이번 회의의 근간으로 잡은 것은 잘한 일"이라고 오바마의 이니셔티브를 가치있는 일로 평가하고 있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핵물질 방호의 진전은 오바마 대통령이 그가 추구하는 핵무기 감축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국제적인 탄력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