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딸 황 라이사 운정예브나 할머니
부친 러시아서 항일운동…스탈린 집권후 카자흐로 강제이주


"아버지는 늘 고국을 그리워하다 눈을 감으셨습니다.

저도 건강이 허락된다면 그리운 모국인 한국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황 라이사 운정예브나(90) 할머니는 일본강점기 러시아 등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카자흐스탄에서 숨진 고(故) 황운정씨의 딸이다.

황씨는 일제 식민지 때 러시아 빨치산으로 가입해 일본군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로, 한국 정부는 2005년 황씨를 독립운동가로 공식 인정했다.

'제2의 조국' 카자흐스탄에 사는 황 할머니는 28일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생전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한 한국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쏟아냈다.

황 할머니는 "아버지는 1919년 3ㆍ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옥살이했지만 내가 태어난 1920년 탈출해 중국을 거쳐 러시아에서 항일 운동을 했다.

아버지의 탈출 후 어머니는 심한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황 할머니의 어머니는 러시아에 남편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고국을 떠날 것을 결심했다.

러시아에서 부부는 극적인 상봉을 했으나 가족의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스탈린이 집권한 후 지식인이었던 황씨는 '조국의 배신자'라는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고, 1937년 황씨 가족은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 카라간다로 강제 이주됐다.

황 할머니는 "아버지는 옥살이를 하면서도 무혐의를 밝히는 진정서를 계속 보냈지만 결국 스탈린 사망 이후 1956년에야 풀려났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의 잦은 수감생활로 가족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한번도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일본 침략에 정당하게 저항했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후 20여 년을 가족이 모여 살았으며, 1979년 할머니의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떴고 10년 후인 1989년에는 아버지마저 눈을 감았다.

황 할머니는 사망한 아버지 대신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러 2005년 한국을 찾았던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아버지가 직접 받아야 하는 것을 대신 받았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을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가 떠올라 눈물이 난다"고 털어놨다.

이어 "아버지는 진정한 애국자였다.

해방 후에도 아버지는 한국이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잘사는 나라, 강한 나라가 되길 항상 기원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침략으로 생긴 상흔이 마음 한구석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고려인' 황 할머니. 그는 "일제시대를 겪지 않은 젊은 고려인들이 한국을 잘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며 어린 시절 떠나온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kong7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