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에 지진이 강타한 지 나흘이 지나면서 전 세계에서 구호의 손길이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도로 항구 등의 파괴로 배급망이 붕괴되면서 구호물자의 전달은 물론 '마지막 생명 살리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15일 현재 아이티 지원 의사를 밝힌 국가는 최소 30개국에 달한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는 이미 8개 구조팀이 도착해 생존자 수색 및 구출작업을 벌이고 있다. 월마트 구글 AT&T UPS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기업들도 구호 물자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휴대폰과 신용카드를 통한 전 세계인의 소액기부도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항만과 도로가 완전히 파괴되고 아이티 정부 기능도 사실상 마비된 상태여서 이재민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포르토프랭스 항구는 이번 지진으로 일부 부두가 물에 잠기고 하역을 위한 크레인이 파괴돼 대형 선박의 접안이 불가능한 상태다. 진입로도 끊어져 새로 길을 내지 않는 한 물자 수송이 힘들다. 유일하게 외부 세계와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뚜셍 루베르튀르 국제공항은 활주로가 하나뿐인 데다 물자 하역 능력이 부족해 극도의 혼잡을 빚고 있다.

지진 발생 이후 아이티 정부는 거의 소멸된 것이나 다름없다. 레이몬드 조셉 주미 아이티 대사는 "현재 연락이 되는 각료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밝혔다. 행정 관리뿐만 아니라 경찰도 한 명 보이지 않는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절망한 아이티인들이 시체를 쌓아 길을 막으며 정부의 무능함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까지 하고 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CNN은 아이티인들이 가족들의 시신을 무너진 집에서 파내 묻고 있으며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시신들이 담요에 쌓인 채 길가에 널려있다고 보도했다. 병원은 초만원 상태로 부상자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다친 부위가 썩어가고 있다. 인력과 장비 부족으로 의사들이 치료를 포기해 방치된 환자들도 널려있다.

깨끗한 물 공급이 끊기고 하수도가 파괴되면서 급성 설사 홍역 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들이 창궐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경찰 인력이 모두 사라진 시내 상점은 이미 대부분 물건이 약탈당한 상태다. 전기가 끊겨 완전한 어둠이 깔린 도심에 이따금 총성이 울린다고 현지 관계자는 전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