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사면령'은 평등권 위반..위법사례 복원

파키스탄 대법원이 군부독재자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의 사면령을 위헌으로 규정하면서 사면령의 수혜자 가운데 하나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현 대통령이 취임후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대법원 전원재판부는 16일 무샤라프가 2007년 단행한 국가화해명령(NRO)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면서 NRO를 통해 사면됐던 모든 위법 사례는 명령 발동 이전 상태로 복원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자르다리 대통령의 스위스 은행계좌에서 발견된 뭉칫돈에 관한 수사를 재개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이에 따라 환경장관 재직당시 각종 이권에 개입해 계약금의 10%를 뜯어내는 관행으로 악명을 떨치며 '미스터 10%'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자르다리는 부패와 살인 등 혐의를 받는 '피고인' 신분이 됐다.

또 총 1천440억 파키스탄루피(약 1조9천940억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자산은 동결됐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로 과거 자르다리의 범죄사건을 되살려 놓으면서도 그의 대통령 자격을 문제삼지는 않았다.

따라서 자르다리는 일단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고 면책특권 때문에 재임중 처벌을 받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파키스탄 역사상 첫 '피고인 대통령'이 된 자르다리의 정치적 입지는 급격하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무샤라프에 의해 단행된 과도한 대통령 권력집중을 해소하라는 압박 속에 최근 핵 통제권까지 총리에게 넘긴 그에게 엄청난 사임 압박이 가해질 것이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피고인인 자르다리의 대통령 자격을 문제삼는 소송도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스위스 등 해외에서 진행되던 검은 돈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자르다리에게 유죄가 선고될 경우 이런 움직임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 정부 고위직에 포진된 자르다리 측근들의 운명도 위태로워졌다.

레만 말리크 내무장관, 아마드 무크타르 국방장관, 살만 파루키 대통령 비서실장 등도 이날 판결로 과거 범죄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고 처벌될 수도 있다.

어쨌든 궁지에 몰린 자르다리측은 대법원의 판결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파르하툴라 바바르 대통령 대변인은 "자르다리 대통령과 여당인 파키스탄인민당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그러나 그가 대통령직에 있는 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직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날 판결은 대테러전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아프간과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 서부 국경지대의 탈레반과 알 카에다에 대한 공세 강화를 주문해온 미국에게도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안긴 것으로 보인다.

(뉴델리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