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 '답신' 주목..북핵 향방 가를 듯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한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한 일이 사실상 확인되면서 향후 사태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북.미간 신경전이 팽팽한 현 국면에서 미국 대통령이 친서를 전달한 것은 그 자체로서 외교적 상징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번 평양 회동을 통해 북미간의 대화가 양국의 최고 수뇌부가 직접 간여하는 중요한 외교적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실무형 대화를 넘어 정상간 '교신'의 채널이라는 새로운 성격이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친서 전달이 북핵 교착국면에 조속히 돌파구를 마련해내는 한편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천명해온 '터프하면서도 직접적인' 대화를 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특히 전임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집권 2기 3년차로 사실상 임기를 거의 남겨두지 않은 2007년 말에 가서야 크리스토퍼 힐 특사를 통해 친서를 전달했던 사례와 비교하면 상당한 속도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의 결정적 키를 쥔 김정일 위원장에게 '명분과 체면'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북한이 6자회담으로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친서외교'는 나름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의 첫 대북특사였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1999년 5월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을 당시 친서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이듬해 10월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통해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답신형태의 친서를 보냈다.

특히 당시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까지 겹치면서 북미 양국은 국교정상화 논의까지 나아가기까지 했다.

부시 대통령도 2007년 12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때 박의춘 외상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했고, 불과 열흘후 북한측으로부터 "미국이 약속을 지키는 한 자신들도 약속을 이행할 것임을 확인한다"는 답신을 이끌어냈다.

이번의 경우 특히 주목할 대목은 오바마 행정부가 친서의 존재 자체를 극도의 보안에 부치는 행보를 보여온 점이다.

미국 행정부 관리들은 친서의 유무에 대해 확인을 거부해왔고, 보즈워스 대표는 방북직후 서울 기자회견에서 "저 자신이 바로 메시지"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질문공세를 피해왔고 6일 국무부 브리핑에서도 공식 확인은 끝까지 거부했다.

미국의 조심스런 행보는 친서 전달이 북한과 직접 담판을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외적으로 이번 대화의 목적을 '6자회담 복귀 설득'이라고 한정해온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공개적으로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가의 관심은 친서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쏠린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보즈워스 대표의 언급으로 볼 때 북한에게 최종 결단을 촉구하는 통첩성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즈워스 대표는 "(친서를 통해) 현재,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미.북 양자관계 등의 미래 비전을 전달했다"며 "미.북 양자관계와 동북아시아내 북한의 전반적인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도 전달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에 열릴 미래 비전과 그렇지 않을 경우에 뒤따를 후과를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북한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에 따라 친서에는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경우 미국은 9.19 공동성명에 따라 모든 요소(평화협정, 관계정상화, 경제지원 등)를 완전 이행할 것이며 ▲비핵화에 진척이 없을 경우 이 같은 요소의 이행이 장애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김 위원장의 답신 여부다.

미 국무부 고위관계자가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직후 "공이 북한에 넘어가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대해 '성의표시'를 한 만큼 어떤 형태로든 김 위원장이 호응하고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은 미묘해 보인다.

북한은 이번 북.미대화에서 보즈워스 대표에게 "6자회담에 복귀할 명분을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친서에서 밝힌 내용 보다 좀 더 확실한 약속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외교가는 풀이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미 양국은 뉴욕채널을 통한 물밑 조율을 거쳐 후속 고위급 대화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미국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하게 되면 김정일 위원장이 어떤 형식으로든 '답변의 메시지'를 미측에 보낼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북핵 협상의 향방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