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자발적 거리시위에 10만 명 참여

`스캔들의 황제'로 불리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여론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

토요일인 지난 5일 오후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는 보라색 스카프와 셔츠를 입은 시위대 10만여 명(경찰추산 9만 명)이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였다.

특히 이번 시위는 지난달 한 인터넷 블로거 모임의 자발적인 제안으로 시작돼 무려 36만 여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참여함으로써 실현시킨 것으로, 정치 정파의 개입을 일절 배제한 행사라는 데 의미가 있다.

시위 주최 측은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상징하는 이니셜 `B'에서 착안해 이 날을 `NO B Day'라고 명명했고, 이탈리아 정당들이 사용하지 않는 색깔인 보라색을 상징으로 삼았다.

최근 집권 후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이며 하락 추세에 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 사퇴 압력까지 가중되면서 위기가 점차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0대 여성모델과의 성 추문, 성매매 여성과 밤을 보냈다는 의혹 등에 시달리면서도 높은 인기를 누려왔다.

미디어 그룹을 소유한 억만장자로서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탈리아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스캔들을 `정적의 공세'로 치부하는 대응이 먹히는 듯 했다.

하지만 스캔들의 초점이 섹스에서 부패 사건과 마피아 연루설 등으로 전환되면서 "해도 너무 한다"는 여론과 함께 지지율도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난 10월7일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과 총리, 상.하 양원 의장 등 4명의 최고위 공직자에 한해 재임 기간 형사상 소추를 면제해주는 면책법안이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2건의 법정투쟁을 치러내야 할 형편이다.

하나는 그가 1990년대에 2건의 공판에서 위증을 해준 대가로 영국인 변호사 데이비드 밀스에게 60만달러를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소유한 미디어셋 그룹을 통해 TV 채널에 관한 권리를 구입하면서 탈세와 회계 조작을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여기에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밤을 보낸 모델 출신 성매매 여성 파트리치아 다다리오(42) 씨가 최근 출간한 책 `즐기세요, 총리님'을 통해 자신이 협박과 신체적 위협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4일에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1990년대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한 폭탄테러로 악명높은 시칠리아 마피아 코사 노스트라의 대부와 밀약을 맺었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고, 그로부터 하루 만에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의 2, 3인자가 경찰에 잇따라 체포됐다.

이에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마피아 조직원 체포는 남을 헐뜯기나 하는 무책임한 인간들의 비방에 대한 최선의 대응"이라며 역공에 나섰지만,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처럼 베를루스코니 총리에게 불리한 상황이 계속 전개되면서 총리 임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 조기총선이 실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제네바연합뉴스) 맹찬형 특파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