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일의 차기 외무장관으로 유력한 귀도 베스터벨레 자민당(FDP) 당수는 최근 "외무장관이 되면 공식 행사에서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베스터벨레 당수는 지난달 28일 총선 승리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BBC방송 기자가 영어로 질문하자 "독일어로 말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독일어 언어주권을 강조했다.

#2."미국에서 (스페인계) 히스패닉의 가치는 곧바로 미국의 가치다. " 백악관은 지난달 '히스패닉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명의로 '히스패닉 문화'를 기리는 논평을 발표했다. 한때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스페인어로 부르는 것에 대한 논란도 일었지만 스페인어 사용 인구가 늘어 영향력이 커지면서 스페인어는 사실상 미국의 '제2 언어'가 됐다.

세계 주요국이 글로벌 주도권을 쥐기 위한 언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공용어로서의 영어 위상이 확고한 가운데 중국어와 스페인어가 급속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어와 독일어,프랑스어는 과거의 위상을 급속히 잃고 있는 상황이다.


◆'글로비시'의 부상

세계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이 15억명으로 추정되면서 영어는 확실히 현대의 '링구아 프랑카(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영어 사용자 중 영어가 외국어인 사람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보다 3배가량 많은 상황에서 '원어민 영어'보다는 알아듣기 쉬운 '제3자 실무형 영어'가 오히려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1500개 단어만을 조합해 단 · 복수와 관사를 무시하는 등 간단하고 쉬운 표현만 사용하는 '글로비시(글로벌+잉글리시)'가 비영어권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싱글리시'나 '스팽글리시'처럼 세계 각국의 현지 언어와 결합한 '방언'들도 다양해지고 있다. 여기에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각종 신조어가 폭증하고 있다.

◆중국어 열풍…프랑스어는 시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중국어는 최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월가의 거물 짐 로저스가 자신의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등 '필요에 의해' 중국어를 배우는 인구도 급증하는 추세다. 중국 정부는 세계 각국에 중국어를 전파하기 위해 2004년부터 현재까지 81개국 324개소에 공자학원을 설립했다.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120년간 1110개,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이 70년간 230개,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가 50년간 128개 설립된 것을 능가하는 실적이다. 중국 정부는 공자학원을 2010년까지 500개소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스페인어도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이 "히스패닉계의 거대한 유입으로 미국 사회가 영어와 스페인어의 2개 언어로 나뉘고 있다"고 평했듯 급속한 신장세다. 특히 스페인어는 강한 문화정체성을 동반하며 스페인과 중남미 여러 국가,미국에서 강한 유대감과 결속력도 자랑하고 있다.

반면 구소련이 무너지기 직전인 1990년만 해도 3억명이 사용했던 러시아어는 최근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냉전 시절 위성국가 사람들이 모두 필수적으로 러시아어를 배우는 바람에 러시아인들은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었지만 구소련 해체 이후 모두 옛날 얘기가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이 2025년에는 1억5000만명 정도에 그쳐 1990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만 사용토록 하는 등 러시아어는 사회 곳곳에서 배척되고 있다. 러시아와 전쟁까지 벌였던 그루지야는 TV 채널과 라디오에서 러시아어 프로그램을 금지했다.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타지키스탄에서도 러시아어가 점차 발을 못 붙이고 있다.

아프리카 각국에서 사용되고 외교공용어인 프랑스어도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한때 '학술언어'의 대명사로 꼽혔던 독일어도 학문 주도권이 영어권으로 넘어가면서 중부유럽 지역어로 위축됐다. 중앙아시아 각지에서 통용되는 투르크어와 아랍어,힌두어 등은 사용자 수가 많지만 아직 글로벌 언어 경쟁에선 한참 뒤처진 상태다.

김동욱/서기열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