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정당인 자민당의 은총으로 메르켈이 총리직을 유지하게 됐다. "(슈피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처음 치러진 27일 독일 총선은 '작은 정부'와 '친기업'을 표방한 우파 정당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독일 언론들은 일제히 이번 총선의 진정한 승자로 강력한 친기업 정책을 표방한 자유민주당(FDP)을 꼽았다. 귀도 베스터벨레 자민당 당수는 유력한 부총리 겸 외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며 향후 독일의 경제 · 외교 정책에 큰 입김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에서 세금 감면과 노동시장 규제 완화 등 경제개혁과 친기업 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독일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전체의 경제정책이 보다 '오른쪽'으로 향할 것으로 점쳐진다.

◆우파연정 탄생 일등공신은 경제위기

독일에서 11년 만에 우파 연립정부가 수립된 가장 큰 요인으론 경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이자 세계 최대 수출국인 독일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60년 만에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보통은 경제위기 때 유권자들이 집권당을 응징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독일의 경우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위기를 비교적 잘 수습하고 있다고 평가받은 데다 최근 들어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오히려 집권당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 지난 8월 실업자 수는 3만명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오히려 1000명이 줄었고 경기신뢰지수와 소비자신뢰지수도 최근 1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정책은 '선방'했다는 평을 받았다. 수출도 기대 이상으로 늘면서 메르켈 정부에 힘을 보탰다.

여기에 기독교민주당(CDU)의 라이벌인 사회민주당(SPD)은 소수파트너로 대연정에 참여하고 있어 현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어느 정당의 경제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47%가 기민 · 기사당 연합을 꼽으며 사민당(25%)을 압도했다. 좌파 정당인 사민당은 "우파연정이 탄생하면 독일은 세계 최대의 비정규직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며 소득 재분배에 초점을 맞춘 총선 공약을 발표하는 등 세제,고용,복지 분야에서 공세에 나섰지만 국민들의 반향을 얻지 못했다.


◆경제 거인의 선택은 시장친화 정책

조만간 출범하는 보수연정은 우선 자민당의 주장대로 세금 인하 등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2021년까지 독일 내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는 기민 · 사민 대연정의 합의를 백지화하고 가동 시한을 연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재무장관에는 자민당 중진인 헤르만 오토 졸름스(68)와 칼 테오도르 추 구텐베르크 현 경제장관(37)이,경제장관에는 구텐베르크 현 장관이나 자민당의 라이너 브뤼더레 원내 부의장(64)이 거론되고 있다.

세금 인하는 재정적자로 인해 당장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소득세,법인세,상속세 인하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자민당은 현재 소득에 따라 각각 14%,24%,42%인 세율을 10%,25%,35%로 낮출 계획이다. 기민당은 최저소득세율을 12%로 낮출 방침이다. 자민당은 또 해고와 고용을 쉽게 하는 노동시장 개혁을 주장하고 있어 이 분야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주목된다. 우파연정은 이와 함께 각종 사회복지 보조금 삭감을 통해 예산 적자 감축도 추진하고 있다. 홀거 슈미딩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유럽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메르켈 총리가 재집권함에 따라 독일의 잠재성장률은 높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우파연정은 이 밖에 2021년까지 17개 원전을 모두 폐쇄한다는 현 대연정의 합의를 폐기하고 가동 시한 연장을 추진할 전망이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도 좀 더 친기업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독일 자동차산업에 피해가 될 수 있는 기후변화 관련 조치에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등은 이날 메르켈 총리의 재선을 축하하고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김동욱 기자/베를린=이상은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