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좌파 집권 국가는 고립된 섬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2000년 당시 유럽연합(EU) 15개국 중 12개국에서 단독 집권했던 좌파는 10여년 만에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잇따라 퇴출돼 스페인과 영국 등에서만 명맥을 유지하는 형국이다.

이번 독일 총선에서 중도우파 기독교민주당 · 기독교사회당(CDU/CSU) 연합은 제1당의 지위를 지키면서 자유민주당(FDP)과 보수연정을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대연정에 소수 파트너로 참여했던 사회민주당(SPD)은 전후 최악의 득표율로 참패했다. 지지율은 3분의 1(11.2%)이나 떨어졌고 의석 수는 무려 76석을 잃었다. 독일에서도 좌파 정당이 몰락함에 따라 유럽 주요국 중 좌파 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지난해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이 승리한 스페인과 2005년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3기 연속 집권에 성공한 영국 등 사실상 2개국만 남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2007년 5월 대선에서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좌파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고 이탈리아에서는 2008년 4월 총선에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 연합이 상 · 하원 모두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다. 지난 6월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우파 정당들이 승리한 반면 좌파 정당들은 25% 수준으로 지지율이 추락했다. 이에 앞서 좌파의 모델이었던 북유럽에선 2001년 덴마크에서 중도우파 정부가 들어서고 2006년 스웨덴의 예란 페르손 총리가 우파에 패배했다. 뒤이어 핀란드 그리스 네덜란드도 우파에 넘어갔다.

결국 2000년 EU 15개국 중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12개국에서 단독 집권하고 2개국에서 연정에 참여했던 좌파는 EU 회원국이 27개국으로 늘어난 현재 공산국인 키프로스를 포함해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4개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27일 치러진 포르투갈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은 승리했지만 과반 확보에 실패했고 영국 노동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UKIP)에도 뒤진 15.3%의 득표율로 3위에 머무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좌파 정당들이 몰락하는 이유로는 경제위기 시대에 분명한 정책 대안과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제3의 길' 등 애매한 수정노선을 주창하면서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것도 한몫 했다.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종교적 대립,중동 · 아프리카 이민자들로 인한 사회불안,높은 실업률 등도 악재로 작용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