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가 달러당 80엔대에 진입했다. 심리적 지지선이던 90엔 선이 깨진 것이다. 일본 간판 기업들은 엔고가 이어지면서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반면 영국 파운드화는 약세 행진 중이다. 특히 양국 경제 · 통화정책 책임자들의 발언이 이 같은 엇갈린 추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엔화 7개월여 만에 달러당 90엔 깨져

엔화 가치는 지난 주말 급등세를 타면서 달러당 90엔 선이 깨졌다. 엔화 가치는 뉴욕 외환시장에서 전날보다 달러당 1.70엔이나 높은 89.51엔까지 올랐다. 올 2월 초 이후 7개월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화는 주요국 통화에 대해서도 일제히 강세를 나타냈다.

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이 엔화 약세를 위한 외환시장 불개입론을 다시 강조한 게 엔고에 불을 지폈다. 미국을 방문한 후지이 재무상은 지난 주말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일본의 내수 성장이 세계경제에 바람직하며 (수출 지원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일본 정부가 수출 기업에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엔화 강세를 용인할 것이란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시장은 해석했다. 주오미쓰이신탁은행의 가와나베 모토 자금부 조사역은 "미국이 저금리 기조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당분간 달러 매도세(달러 약세)는 이어질 것"이라며 "이번 주 중 달러당 88엔대까지 엔화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전자 등 일본 주요 수출기업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본 수출업체들은 올해 엔화 환율을 달러당 90~95엔으로 예상하고 경영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엔고가 지속되면 실적이 크게 나빠진다. 도요타자동차와 혼다는 달러당 엔화 가치가 1엔 오를 때마다 연간 영업이익이 각각 250억엔과 120억엔씩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파운드화 약세…1.6달러 아래로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영국 파운드화는 지난 주말 런던 외환시장에서 1파운드당 1.5918달러에 거래됐다. 이는 지난 6월8일 이후 근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파운드화가 1.6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7월8일 이후 처음이다. 파운드화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유로당 0.9219파운드까지 떨어지면서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파운드화 가치가 유로당 0.92파운드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4월1일 이후 처음이다.

영국의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머빈 킹 영국중앙은행(BOE) 총재가 "파운드화 약세가 수출을 늘려 영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점이 파운드화를 끌어내렸다. 파운드화는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1파운드당 2달러 수준의 강세를 보였으나 금융위기로 영국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지난 1월에는 23년 만에 최저 수준인 1.35달러까지 떨어졌다. 이후 8월 파운드당 1.69달러 수준으로 회복됐으나 재정적자 급증에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BNP파리바는 "BOE가 파운드화 가치 하락에 신경쓰지 않는 한 파운드화는 연말 1.54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세계 각국의 환율이 요동을 치면서 미국에서는 환율 변화에 과감하게 베팅하는 개인투자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WSJ는 현재 개인 간의 환거래 규모가 1200억달러로 3년 전의 두 배 수준에 이른다며 씨티그룹 등 대형 금융사들이 개인을 위한 환율상품과 온라인 통화거래 플랫폼을 개설하고 있다고 전했다.

WSJ는 개인들이 최고 500 대 1까지 레버리지(차입)를 일으켜서 투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과감한 베팅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높은 위험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박성완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