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가 끝나감에 따라 금융시장에서는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달러 가치가 본격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지난 주말 전반적인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평가지수는 76.5로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달러 · 유로 환율은 1.45달러대가 뚫린 지 오래됐고,엔 · 달러와 원 · 달러 환율도 각각 90엔,1220원 선이 다시 붕괴될 위험에 놓여 있다. 다른 통화들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잇따른 미국 경기침체 종료 발언에도 불구,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안전통화로서의 달러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당초 2010년 이후까지 지속될 것이라던 위기를 앞당기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막대한 비용 지출로 재정적자가 누적돼 달러화 위상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세지는 중심통화 논의도 달러 수요를 줄이는 요인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달러 약세가 진행되면 될수록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자국 통화가치 상승 속도가 빨라지는 악순환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런던금융시장에서 달러-리보 금리가 엔-리보 금리보다 낮은 상황에서 달러가치마저 약세를 보일 경우 달러캐리자금 차입이 활발해지고,이 자금이 유입되는 다른 국가들의 통화가치는 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이외 국가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절상되는 자국 통화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본만 해도 새로운 민주당 정부를 맞았지만 경기는 여전히 침체 국면이다. 이 상황에서 엔화 가치가 90엔 선이 다시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벌써부터 일본 경제가 '하토야마 불황'에 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도 경기가 그 어느 국가보다 빨리 회복되고 세계 중심통화가 될 것이란 야망은 갖고 있지만 경기부양 차원에서 위안화 가치는 떨어지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오바마 정부의 끊임없는 절상 요구에도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6.8위안대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도 이 같은 사정에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 한국 등도 자국 통화 가치가 절상되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는 못한 상황이다.

이론상으로 특정 국가가 경기회복 목적 등으로 자국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시키면 그에 따른 경쟁력 개선과 수출 증대 효과는 경쟁국에는 불이익으로 고스란히 전가돼 대표적인 '근린 궁핍화 정책'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달러화 같은 중심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면 다른 국가들은 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때 다른 국가들도 방어 차원에서 자국통화 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뜨리게 되면 세계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들어서고 세계경기는 침체 국면에 빠져든다.

대신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 안정 차원에서 새로운 중심통화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는 것이 경제사에 있어서 전형적인 경로다.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며 국제통화 체제가 그 이전의 '팍스 브리태니아'에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로 바뀌면서 중심통화도 영국의 파운드화에서 미국의 달러화로 넘어갔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에 프랑스와 중국이 주도가 된 새로운 중심통화 도입 논의는 그 후 브릭스와 유엔 등 국제기구에 이어 오는 24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릴 G20 회담에서와 같은 국제협의체에서 본격적으로 거론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논의된 새로운 중심통화만 하더라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제3의 통화인 테라(Terra),위안화,유로화 등 다양하다.

범 세계적인 차원의 중심통화뿐만 아니라 지역 블록별로도 공동화폐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아시아지역뿐만 아니라 중동 남아프리카 중남미 지역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의 명칭을 딴 '○○ 유로' 도입 안건은 이제 단골메뉴가 되고 있다.

달러 약세에 따라 미국 이외의 국가들이 자국의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내리고 범세계 혹은 지역별로 다양한 중심통화를 도입하기 위해 경쟁한다면 마치 '화폐전쟁'을 방불케 하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은 이제 위기 이후 찾아올 새로운 환경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