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명문가는 미국 · 일본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귀족들로만 상원이 구성되는 영국에선 유서 깊은 명문가 출신들이 많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의 경우 윌리엄 4세의 후손으로 현 엘리자베스 2세와 친척 관계다.

유럽 대륙에선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정계에서 활약 중인 인물이 적지 않다. 테오로르 추 구텐베르크 독일 경제장관의 본명은 '칼 테오도르 마리아 니콜라우스 요한 야콥 필립 프란츠 요셉 질베스터 프라이헤어 폰 운트 추 구텐베르크'.긴 이름은 귀족의 상징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기독교사회당(CSU) 정치가로 1966년 키징어 총리가 첫 대연정을 실시할 때 내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인도나 파키스탄의 명문가는 아예 '왕조'에 비견된다. 현대 인도 정치사의 중심에 서있는 네루 · 간디 가문이 대표적이다. 네루 · 간디 가문은 지난 6월 인도 총선에서도 정치 향방을 좌우했다. 이 가문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3명의 총리를 배출하고 37년간 인도를 통치했다. 올 총선에서도 가문의 5세대 대표주자인 라훌 간디가 국민회의당을 이끌면서 승리를 이끌었다.

변호사였던 모틸랄 네루가 마하트마 간디가 이끌던 국민회의당에서 활동하며 인도 정치에 등장한 네루가는 모틸랄의 아들 자와할랄 네루가 1929년 국민회의당 대표직에 오르고,인도가 독립한 1947년부터 1964년까지 17년간 인도 총리를 역임하면서 명문으로 떠오른다. 이어 자와할랄 네루의 무남독녀 인디라 네루가 페로제 간디와 1942년 결혼,인디라 간디로 이름을 바꾸면서 '네루 · 간디'가문의 화려한 역사가 꽃핀다. 인디라 간디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2년 만인 1966년 총리직에 오르고,인디라 간디의 장남인 라지브 간디 역시 1984년 총리가 된다.

하지만 라지브 간디가 1991년 암살당한 뒤엔 부인 소냐 간디가 1999년 총선에 출마해 승리하고 2004년 총선에서 압승,제1당의 대표가 되면서 가문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현재 그의 아들인 라훌 간디는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파키스탄에선 2007년 암살된 베냐지드 부토 전 총리의 부토가문이 최고 명문가로 꼽힌다. 부토가는 파키스탄 최초의 선출직 총리를 비롯해 총리 2명을 배출했다. 현재 부토의 장남 빌라왈 부토 자르다리가 '가문정치'를 이어가려 노력 중이다.

중국에서는 타이즈당(太子黨 · 공산당 원로 및 고위간부 자제)이 주목된다. 타이즈당의 거두로 통하는 쩡찡훙 전 국가부주석은 1990년대 들어 정계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시진핑 국가부주석도 타이즈당 출신이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