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버냉키가 색소폰을 던진 까닭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과 후임인 벤 버냉키 현 의장은 대머리 아저씨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외모처럼 인생도 묘하게 닮은 꼴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닮아가지 말아야 하는 운명이다.

두 사람의 뿌리는 유대계로 같다. 그린스펀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18년간 의장직을 연임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재지명된 버냉키는 상원 인준을 거치면 2014년까지 8년 연임하게 된다. 미국 금융계를 유대인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FRB가 장장 26년간 연속해 유대인의 지휘를 받는 것이다.

학창시절 취미와 좌절 경험마저 비슷하다. 그린스펀은 고등학교 때 클라리넷과 색소폰에 재능을 보였다. 줄리어드음대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다가 중도 포기했다. 버냉키는 고등학생 시절 상당한 색소폰 연주실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1966년 록밴드에 참여해 지방 TV방송의 장기자랑 경연에 나섰다가 연주를 망치는 바람에 색소폰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그린스펀과 버냉키의 닮은 꼴은 보다 더해진다. 그린스펀은 1998년 대형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촉발한 금융위기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투입해 대응했다. 2001년 9 · 11테러 사태로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자 당시로선 사상 최저인 연 1%대로 기준금리를 인하해 2004년까지 유지시켰다. 그는 연이은 위기 돌파로 '마에스트로'라는 추앙을 받았다.

버냉키는 훨씬 과감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가 지난해 터진 뒤 금융권에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퍼부었다. 기준금리는 사실상 제로(0)%로 끌어내렸다. 각종 비상대출 창구를 만들어 시중에 달러를 뿌려댔다.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조차 붙여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혜롭고 창의적인 대응이었다"며 그를 FRB 의장에 재지명했다.

닮은 꼴 행로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그린스펀 신화는 출구를 제때 찾지 않아 빛이 바랬다. 그는 저금리 정책을 지나치게 길게 유지시켰다. 시중 유동성이 과도하게 불어나 주택시장에 심각한 거품이 생겼다. 거품은 붕괴되고 그 결과는 사상 초유의 글로벌 경제위기로 나타났다. 그린스펀은 시장의 자율규제만 믿고 위기의 주범인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관련 파생금융상품의 규제도 반대했다. 그는 결국 의회 금융위기 청문회에 불려나왔다. 시장 완벽주의 지론과 정책판단에 결함이 있었다며 위기의 공범임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미국 경제가 회생 기미를 보이자 버냉키의 재임은 또다른 영웅의 탄생으로 환영받는 분위기다. 설문조사에서 월가 금융인들 가운데 80%가 그의 연임을 찬성했다. 버냉키는 그럴수록 부담이 커진다. 샴페인 뚜껑을 딸 처지가 못 된다. 대거 풀어놓은 돈을 거둬들이고,경제성장을 가로막지 않으면서 거품(인플레)을 만들지도 않는 출구전략 카드(금리인상)를 언제 빼들어야 할지가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그린스펀의 실패'는 절대 닮아서는 안될 반면교사다.

바닥에서 주식을 가장 싸게 사는 것은 '기술'이지만 천장에서 주식을 가장 비싸게 파는 것은 '예술'이라고 했다. 버냉키가 롱런하고 완전한 영웅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위기수습 기술을 능가하는 예술적인 출구찾기가 필요하다. 영웅과 역적은 백지 한 장 차이다.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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