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협력관계'서 `경쟁관계' 되나

최근 건강보험 문제 이외에는 별다른 뉴스가 없는 미국 워싱턴 정가에 빌-힐러리 클린턴 부부의 미묘해진 관계가 단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선거총책격으로 부인 힐러리 후보를 열성적으로 `외조'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지난 주 북한에 억류중이던 미국적 여기자 2명을 구해내면서 공적인 `부부관계'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됐기 때문이다.

`여기자 구하기'에 성공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간 시들했던 대중적 인기에 다시 날개를 단 반면, 중요한 본업중 하나인 대북외교의 무대를 남편에게 내준 힐러리 장관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형국인 듯 하다.

마침 12일 공개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라스무센의 조사결과는 클린턴 부부의 이런 뒤바뀐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라스무센이 지난 9-10일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호감도 조사에 따르면 빌 클린턴은 58%의 지지를 얻어 53%에 그친 힐러리를 제쳤다.

이런 결과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일 주일 전 북한에 억류돼 있던 유나 리와 로라 링 기자를 극적으로 구출해 내는데 성공한 `반사효과'로 해석되고 있다.

이로써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해 대선과정에서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가 실추됐던 대중적 인기를 상당 부분 만회했다.

반면 힐러리는 지난 주 초 국무장관 취임후 최장 출장인 7일간의 아프리카 방문에 의욕적으로 나섰다가, 때마침 이뤄진 남편의 방북으로 초장부터 언론의 관심을 빼앗기는 신세가 됐다.

게다가 힐러리는 10일 콩고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에서 열린 공개질의 시간에 남편의 견해를 묻는 대학생 질문에 "국무장관은 남편이 아니라 나"라고 버락 화를 냈다가 외교수장답지 못하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아프리카 순방에 나섰다가 계속해서 남편의 방북결과를 설명해 달라는 주변의 요구에 힐러리 장관이 시달리다가 참다못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는 동정론도 있지만, `외교적이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적지 않은 상태다.

여기에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힐러리가 아프리카에서 감정을 폭발시킨 날,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호텔의 최고급 스테이크하우스에 지인들을 초청, 63회 생일파티를 9일이나 앞당겨 가진 것으로 알려진 점도 클린턴 부부의 묘해진 상황을 반영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외교의 중앙무대에 재등장하고, 각종 분쟁의 잠재적 해결사로 부상함에 따라 공식적인 외교수장인 부인 힐러리와의 관계설정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