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 여기자 카드'를 십분 활용,남는 장사를 했다는 분석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방북으로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재'를 과시함으로써 일각의 '북한체제의 조기 붕괴론'을 차단하는 가시적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뇌졸중 수술 이후 최근까지 건강이상설에 휩싸였던 김 위원장은 지난 4일 오후 클린턴 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데 이어 저녁에는 백화원 영빈관에서 만찬을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최소 2~3시간은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식 일정을 김 위원장이 무리없이 소화한 것을 감안할 때 그의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적대국'인 미국 전직 대통령과 얼굴을 맞댈 만큼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이 확인됨에 따라 대내외에 확산돼온 '북한 붕괴론의 차단 효과'와 함께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은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조 · 미 대결전'에서 김 위원장이 승리했다며 이를 체제 안정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전망이다.

북한이 꽉 막혔던 미국과의 대화 물꼬를 튼 것도 성과다. 물론 당장의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미 행정부가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을 개인적 행보로 의미를 축소하며 '여기자 문제와 정치 현안 분리 원칙'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양측 간 '빅딜'은 물론이고 공식적인 대화를 시작하기까지 상당한 험로가 예상된다.

이와 관련,케냐를 방문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미국 여기자 2명을 석방한 후 "도발을 끝내고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전적으로 북한에 달렸다"고 밝혔다. 클린턴 장관은 "여기자 석방이 북한이 진행 중인 핵 프로그램과 별개의 문제"라고 못박았다. 미국 관리들도 "이번 여기자 석방과 관련해 미국정부가 어떤 보상도 약속한 바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북 · 미 양자 대화가 가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6자회담 틀내에서 진행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며 "미국이 설정한 대화의 조건인 '비가역적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조치가 가시화되기 전까지 미국의 대북 제재 행보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