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민주화를 이끈 큰 별이 졌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이 76세를 일기로 1일 타계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아키노 전 대통령은 지난 16개월 동안 결장암으로 투병해왔다.

필리핀의 명문 정치가문에서 태어난 아키노는 평범한 주부에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선구자로 변신,대통령까지 올랐다. 1983년 야당 지도자였던 남편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가 미국에서 귀국하다 필리핀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하며 그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이후 정치에 뛰어들어 1986년 '피플 파워' 무혈 봉기를 이끌었다. '코리'라는 애칭으로 불린 아키노는 당시 남편의 암살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부의 명령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100만명에 가까운 군중을 모아 독재정부를 무너뜨리고 군부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직까지 오르는데 성공했다. 필리핀의 민주화 경험은 한국과 남미 등 전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아키노는 비폭력 시위의 세계적인 선구자가 돼 '현대의 잔 다르크'로 추앙받기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아키노는 대통령 임기를 6년 단임제로 제한하며 필리핀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대통령 재임 당시 수차례 쿠데타 시도에 휘말리는 등 정치 경험이 부족해 기득권 세력에 휘둘렸다는 비판도 있다. 1987년에는 대통령궁이 반대파의 박격포 공격을 받는 등 시련을 겪었다.

필리핀 정부는 1주일간 국민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아키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