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 (3) 의원 '멱살잡이' 국가 신인도에 치명타

나는 한때 한국식 민주정치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민주정치라면 오로지 '미국식'이 있을 뿐 변종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미국 기준과 다를 때는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한국식 민주정치가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됐다.

미국은 땅이 넓고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나라다 보니 강력하고 빈틈없는 제도가 필요하다. 여기서 벗어났을 때는 인정사정 없는 처벌이 불가피하다. 형제는 물론 친한 친구 간에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서로 고소하는 게 비일비재하다. 인간미는 없어 보이지만 그렇게 해서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며 나아가 '악법도 법'이란 믿음을 세울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단일민족 탓인지 인정이 앞선다. 예컨대 동생이 형을 고소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 위반임에도 그동안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 등을 참작해 법 바깥에서 판결을 내리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미국식'으로 따지면 합리적이지 못하지만 그 나름의 장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10년 전 한국이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됐을 때 국민들이 나서서 반지를 빼주고 은수저를 기증하는 장면을 미국 국회의사당에 장치된 TV를 통해 봤다. 이 역시 '미국식'으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큰소리로 "나는 한국인이란 게 자랑스럽다"고 외쳤다. 동료 의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내줬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무조건 인정머리 없는 미국의 법과 제도를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법 제도에는 인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는 결국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도 인정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종종 한국 국회의사당에서 의원들끼리 멱살을 잡고 싸우는 모습을 본다. 처음엔 한심하더니 자주 접하다보니 이젠 별로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끼리 치고 받고 하는 추태가 외국신문에 대서 특필돼 국제적인 망신을 사는 일이다. 어렵게 쌓아 올린 국가 이미지도 와르르 무너진다. 미 의회에서는 의원들끼리 멱살을 잡고 흔드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국 의원들은 의회의 권위만 알았지 의사당 내에서 신사답게 행동하는 전통은 배우지 못했다.

우리만의 민주정치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작용쯤으로 생각하고 싶다. 인정 많은 우리의 전통을 지켜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미국의 성공사례를 잘 연구해 발전적으로 적용해나가면 된다. 이 칼럼에서 한국과 미국의 정치를 비교해가며 쓴소리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아쉽지만 아직까지는 미 의회에 들어가 의정 활동을 해본 사람이 한국계로는 아직 나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미국의 법과 제도를 잘 안다고 자부한다.

우리 국민은 현명하다. 엄청난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 인파를 보면서 또 의사당을 버리고 거기에 합세한 야당의원을 바라보며 무슨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시위도 이젠 한풀 꺾인 것 같다.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언젠가는 '인간의 얼굴을 가진' 한국식 민주정치를 전 세계가 따라 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전 미국연방 하원의원 · 워싱턴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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