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 소행 가능성 급부상

한국인 엄모(34.여)씨 등 외국인 9명을 납치한 무장조직이 15일 엄씨를 포함, 인질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예멘에서 무장한 부족들이 그간 수감된 동료의 석방이나 구호품 지원 등 다른 특정한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외국인들을 납치했다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수주일 만에 대체로 무사히 석방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인질 살해는 매우 놀랍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 dpa 통신은 "외국인 납치는 예멘 부족들의 일반적인 관행이지만, 대부분 평화적으로 해결됐었다"며 이번 인질 살해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빈곤국 예멘에서는 올 한해에만 모두 5건의 외국인 납치 사건이 발생했으나 인질이 살해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의 범죄조직이 애초 예멘 정부가 지목한 북부 사다 지역의 시아파 반군이 아니라 서방권을 상대로 `묻지마 테러'를 자행해온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사다 지역에 근거지를 둔 시아파 반군 `후티' 그룹은 자신들이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정부가 자신들의 이미지를 왜곡하기 위해 술책을 부리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엄씨 등 외국인 9명이 납치된 지역은 이들 그룹의 근거지이기도 하지만, 알-카에다 조직원들의 은신처이기도 하다.

예멘의 한 당국자는 북부 사다 지역이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이뤄져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은신해 있기도 하다고 AP 통신에 언급, 이번 사건에 알-카에다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알-카에다는 지난 1월 사우디아라비아 지부와 예멘 지부를 하나로 통합하는 조직 재정비를 마친 뒤 `성전(聖戰)'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로부터 두달 뒤인 지난 3월 15일 예멘의 시밤 유적지에서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자살폭탄테러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같은 달 18일에는 사건 수습을 위해 예멘을 방문했던 한국 정부대응팀과 유족이 자폭테러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이들 연쇄 테러는 알-카에다가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해 10대 대원을 포섭해 저지른 것으로 예멘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번 납치 사건도 범인들이 예멘이나 관련국 정부에 구체적인 석방조건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인질들을 살해했다는 점에서 폭탄테러와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납치 사건이 발생한 당일인 지난 12일 알-카에다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통합지부의 자금담당 책임자가 예멘 보안당국에 체포됐다.

따라서 `하산 수헤인 알완'이라는 이 자금담당 책임자가 검거된 데 대한 보복으로 알-카에다가 인질을 살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카이로연합뉴스) 고웅석 특파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