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로우키' 행보로 과거 라이벌이었던 오바마 행정부에서 주연으로 부상하고 있다.

작년 대선후보 당내 경선에서 오바마 후보에게 패배를 인정한 뒤 1년이 지나고, 국무장관 취임 4달을 넘긴 지금 클린턴은 전직 퍼스트 레이디 및 상원의원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 오바마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하는 조연 역할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장을 펼치고 있다.

클린턴은 우선 전후 이라크관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군 증파, 파키스탄내 이슬람 저항세력 억제,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등 매우 복잡하고, 난해한 대외정책 과제들을 무난하게 관리해 나가고 있다.

한국 및 터키 방문시에는 대중과 호흡해온 정치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여대생들과의 대화 및 TV 토크쇼 출연을 통해 미국의 이미지를 고양시켰다.

특히 취임 초기 `정적(政敵)간의 동거'가 얼마나 갈지 회의적 시각도 많았지만 백악관과 국무부간 긴장과 알력의 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어 야당인 공화당도 클린턴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클린턴 대한 호평은 몸을 낮추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로우키 행보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유력한 대선후보였지만 클린턴은 지난주에서야 국무장관 취임후 처음으로 일요일 오전 뉴스쇼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리처드 홀브루크 아프간 및 파키스탄 특사 등 거물급 특사를 통해 독자적인 외교를 전개하는 것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외교전문가인 제니퍼 라즐로 미즈라히는 "역대 국무장관 중에서 클린턴 만큼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국무장관도 드물 것"이라며 클린턴의 로우키 행보를 평가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자세를 낮추는 행보를 계속중이지만 은막 뒤에서의 클린턴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은 어느 누구보다도 클린턴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할 때 클린턴의 말을 듣고 결정할 정도로 클린턴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프가니스탄에 2만1천여명의 미군 증파 문제와 관련, 바이든 부통령은 미군 증파에 반대한 반면, 클린턴은 이에 찬성하며 대립했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종국에는 클린턴의 손을 들어줬다.

마크 커크 하원의원(민주, 일리노이주)은 클린턴에 대해 "오바마 내각의 슈퍼스타"라면서 "클린턴이 손 대는 문제는 모두 잘 되가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이다.

클린턴은 `유에스에이(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매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파키스탄.아프간, 이란, 북한 특사 임명도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밝혔다.

특사들은 상원의 인준을 받지 않고 즉각 관련 업무에 착수할 수 있는 잇점이 있는데다 특사들에게 주요 임무를 맡기고 자신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클린턴은 대신 라틴 아메리카, 동아시아 등 간과되는 지역에 신경을 쓰고, 나아가 미국의 대외원조 증액 그리고 외교관 증원 등 국무부 살림살이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또 지난 4월 의회에서 한 공화당 의원이 `장관은 대선 때 독재자들을 만나겠다는 오바마의 공약을 비판했는 데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만나 악수한 것을 어떻게 보느냐'고 꼬집자 "오바마 대통령은 당내 경선에서 나를 꺾고 승리했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독자적인 외교를 해나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상원의원 시절 참모를 지낼 정도로 오랜 측근인 체릴 밀즈 비서실장과 러시아 전문가인 빌 번즈 정무차관, 클린턴 전 행정부에서 예산국장을 지낸 제이콥 루 부장관 등 정치참모 및 외교전문가 그룹을 혼합해 구성한 고위보좌팀을 통해 `스마트 파워' 강화 차원에서 추진중인 외교인력의 25% 증원과 국제개발처(USAID)의 개혁 및 확대작업을 강력히 추진중이다.

클린턴 장관이 오바마 정부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며 장수할 경우 다시 주목되는 점은 오는 2016년 대선에 다시 도전할 지 여부라 할 수 있다.

그때 되면 69세로 작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보다 3살이 어린 클린턴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