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이 대선에서 패한 뒤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뚜렷한 대표주자도 없이 표류를 계속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공화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실책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100층 빌딩을 올라가야 하는데 지하실에서 헤매는 형국'이란 비유까지 나오고 있다.

공화당의 표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유에스에이(USA) 투데이'와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지난 5월29-31일 1천15명을 상대로 실시된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누가 공화당을 대변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2%가 `뚜렷하게 생각나는 인물이 없다'고 답했다.

그나마 이 질문에 응답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극우보수의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가 13%로 가장 높았고, 딕 체니 전 부통령(10%),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과 존 매케인 전 대선후보(6%), 조지 부시 전 대통령(3%), 마이클 스틸 전국위원장(1%)이 뒤를 이었지만 `도토리 키재기' 수준을 면치 못했다.

특히 이들이 모두 58세에서 72세로 은퇴자협회(AARP) 회원에 해당하고, 대부분 극우적 시각을 갖고 있고, 현직 의원은 매케인 한 명으로 차기를 기약할 수 있는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작년 대선에서 공화당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더글러스 홀츠이킨은 "우리당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인식되는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게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고, 에드 질레스피 전 공화당 전국위원장도 "당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려면 변화가 필요하다"고 동조했다.

자신의 당적을 밝히는 정당일체감도 2004년 민주당보다 3% 포인트 앞서다가 올해 들어서는 7% 포인트나 뒤져 70년대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직후보다도 더 떨어졌다.

또 `공화당 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5%가 `비호감'이라고 답했고, `우왕좌왕' `폐쇄적 자세' `경제 망친' 등의 부정적 단어가 주류를 이를 정도로 많았다.

전임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2001년부터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올해 초까지 공화당은 미국 전역의 인구밀집 지역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고, 특히 떠오르는 `새천년 세대'인 30세 미만 층과 급성장하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외면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공화당의 지지층은 노인과 보수적 기독교인 그리고 중서부 일부 주에 국한될 정도로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올림피아 스오우 상원의원(메인주)은 "우리당은 현재 당의 브랜드는 물론이고 정책문제와 관련해서도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들은 현재 공화당에 대해 온건 중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당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공화당원의 3분의 2는 보수노선을 고수해야 하며, 림보와 같은 극우노선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할 정도로 일반 국민과 괴리된 생각을 하고 있다.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던 데이비드 프럼은 "공화당은 현재 오바마 정부의 실수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 당시 백악관 정치담당 국장을 지낸 프랭크 도너텔리는 "대선에서 패한 정당은 흔히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이게 마련"이라면서 앞으로 차기 대선주자가 떠오르면 그를 중심으로 단합해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