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이반' 뎀얀유크 독일 도착
유대인 2만9천명 살해 혐의..정식 기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서 유대인 수만명의 살해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존 뎀얀유크(89)가 12일 독일에 도착함에 따라 사실상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역사적인 나치전범 재판이 곧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 뎀얀유크를 연행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관리들은 이날 비행기 편으로 뮌헨 공항에 도착, 독일 측에 신병을 인도했다.

미국 관리들은 전날 뎀얀유크를 클리블랜드 교외의 자택에서 데리고 나와 앰뷸런스에 태워 인근 공항으로 이동했었다.

그의 독일 도착은 뎀얀유크와 가족들이 독일 송환을 막기 위해 수개월동안 미국과 독일에서 진행했던 법적 절차의 종결을 의미하는 동시에 무려 60년간 미뤄졌던 단죄의 시작을 상징하고 있다.

독일 법원이 지난 6일 미국의 강제송환을 막아달라며 뎀얀유크 측이 낸 소송에 대해 `이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미국에 있다'고 일축한 데 이어 미국 대법원은 지난 7일 노령과 병환을 이유로 가족들이 낸 송환금지 요청을 최종 기각했다.

울리히 슈타우비글 독일 법무부 대변인은 뎀얀유크가 독일에 도착하면 정식 기소가 이뤄질 것이라면서 그는 통상적인 사법절차에 따라 법원에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독일 뮌헨 검찰은 지난 3월 최소한 2만9천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범죄의 종범으로 기소했으며 독일 법원도 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었다.

공포통치로 유명한 러시아 최초의 절대황제 이반 4세에 빗대어 '공포의 이반'으로 불리는 뎀얀유크는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1943년 3월부터 9월까지 폴란드 수보비르 수용소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수용자들을 가스실에서 살해하는 데 적극 협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또 수용소에 도착하는 유대인들을 발로 차거나 총 개머리판으로 무차별 구타했으며, 희생자들이 죽을 때까지 칼로 난자하는 등 극악무도하고 병적인 가학성향을 보였다.

미국에 잠입한 나치지도자들 추적에 주력해온 미 법무부 특별조사국(OSI)은 수보비르 수용소를 "인류가 지구 상에서 만들어낸 것중 가장 지옥과 유사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종전 이후 6년간 독일에 '난민'으로 거주하며 이름을 '이반'에서 '존'으로 바꾼 뎀얀유크는 1952년 미국으로 이주해 1958년 시민권을 획득했다.

자동차부품회사에서 일했던 그는 1988년 미국에서 추방된 뒤 이스라엘 하급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5년 뒤인 1993년 이스라엘 대법원에 의해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었다.

뎀얀유크는 1998년 미국 시민권을 회복했으나 미국 법무부는 2002년 그가 강제수용소 경비원이 맞다면서 1950년대 입국심사와 시민권 신청 때 허위로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시민권을 박탈하는 동시에 언제든지 추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나치 전범을 추적하고 있는 시몬 비젠탈 센터의 창설자이자 소장인 마빈 히어 랍비(유대교 율법학자)는 "뎀얀유크가 최후의 나치 전범 재판일 개연성이 큰 이번 재판을 통해 그가 2차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형용할 수 없는 범죄에 대해 마침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면서 "그는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밀어 넣은 극악한 범죄자"라고 말했다.

비젠탈 센터는 뎀얀유크를 나치전범 수배 명단 3순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1, 2순위 전범들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히어 소장은 또 '고령에다 신장, 혈압 등이 좋지 않은 뎀얀유크를 독일로 강제송환할 경우 그가 긴 여행과 수감생활 등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가족들의 주장에 대해 "그가 살해한 2만9천명의 희생자들도 89세까지 사는 행운을 누리길 원했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미국 당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뎀얀유크가 탄 비행기에 산소호흡기와 심폐소생기 등의 의료장비를 설치했으며 의사 1명도 동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뎀얀유크는 뮌헨 슈타델하임 교도소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병동에 수감될 예정이다.

독일 관리들은 노령인 그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준비를 완료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으로 복무하다 1942년 독일군에 포로로 붙잡혔을 뿐이라며 전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그의 부인인 베라는 독일 대중지 빌트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제 평화롭게 죽기를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연합뉴스) 김경석 특파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