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회사 회장 출신의 후쿠치 시게오(福地茂雄. 75) NHK 회장이 바람직한 공영방송사의 목표와 지향점을 설파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년 만에 외부 출신으로 2008년 1월부터 일본의 공영방송 NHK를 진두지휘하는 후쿠치 회장은 11일 한일 간 방송통신 협력을 강화하고 공영방송의 발전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평소 가졌던 공영방송 지론을 유감없이 밝힌 것.

최 위원장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확보 방안에 대한 조언을 구하자 후쿠치 회장은 "민간방송과 시청률을 겨루는 것은 공영방송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NHK는 일본 내 시청률 1위 방송사가 목표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후쿠치 회장은 대신 전국 시청자의 80% 이상이 1주일에 5분 이상 NHK를 시청하거나 청취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소개했다.

그는 "NHK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는 신속, 공정, 정확성에서 나온다고 보도 부문을 비롯한 모든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매일 얘기한다"며 "특히 정확성을 한층 높이려면 현장에서 이중 삼중으로 확인해야 함을 신입사원을 비롯한 전 직원에게 누차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주의와 함께 공평해야 함을 강조한다"며 "편집권의 독립은 어디까지나 치우침 없는 불편부당함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NHK는 경쟁사보다 소비자를 더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민영방송은 광고주를 의식하지만 공영방송은 내용을 충실히 해 시청자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후쿠치 회장의 말을 들으니 군에서 병과가 따로 없다고 본다"며 "방송사 경영자로서 역량을 입증했으며, 후쿠치 회장을 경영자로 선임한 NHK 경영위원회에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12명으로 구성된 NHK 경영위원회는 NHK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예산, 사업계획, 프로그램 편집 기본계획 등 경영방침이나 업무 운영에 관한 중요사항을 결정한다.

그러나 방송 프로그램의 입안이나 제작, 편성 등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NHK가 국회에서 예산 심의를 받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을 받는지를 묻는 최 위원장의 질문에 대해 그는 "우리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영방송이 아니며, 스폰서의 광고비로 운영되는 민영 방송도 아니다"며 "국민의 수신료로 유지되고 있는 공영방송이다.

국회의 예결산 심의를 받으나 수신료는 어디까지나 세금이 아니므로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경향을 단호히 배제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NHK는 방송법에 따라 광고와 영리목적의 사업이 금지돼 있으며, 수신료가 전체 경영재원의 96% 안팎에 달한다.

최 위원장이 "국회로부터 예결산 심의를 받는데도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묻자 그는 "국회가 개별적 프로그램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며 "논조나 경향에 대해서는 여당이나 야당으로부터 똑같이 이야기를 들어 한쪽으로 치우친 보도를 하기 어렵다.

이는 우리가 중도를 걷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개별 기자나 PD의 인식이나 의도가 프로그램에 투영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후쿠치 회장은 "편집권의 독립은 조직에 주어진 권리이지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며 "편집국장 등 보도 책임자가 불편부당의 원칙에 따라 판단하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한국의 KBS를 NHK나 영국의 BBC처럼 만들고 싶으니 경험을 말해달라"고 최 위원장이 요구하자 "맥주회사도 마찬가지지만 상품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만큼 좋은 상품(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소비자인 시청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NHK는 약속평가위원회와 법령준수위원회 등을 통해 외부로부터 윤리성이나 사업성과 등을 검증받고 있다고 그는 소개했다.

후쿠치 회장은 나가사키(長崎)대 경제학부를 거쳐 1957년 아사히맥주에 입사한 뒤 1999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2002년 회장을 거쳐 2006년 3월부터 이 회사 상담역을 맡은 바 있다.

(도쿄연합뉴스) 국기헌 기자 penpia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