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과격시위 부추기다 민심 등 돌려
아피싯, 은근과 끈기로 탁신의 패착 노려

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포퓰리스트로서 총리직을 2번이나 역임한 '정치 9단' 탁신 친나왓(60)이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과격시위를 선동하다가 40대 중반의 '풋내기 정치인'인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에게 무참히 무릎을 꿇었다.

탁신 전 총리가 독려해온 반정부 시위는 폭력으로 치닫다가 결국 민심이 돌아서면서 힘을 잃었고 탁신은 국내외에 과격시위 선동자로 비치면서 그의 정치생명에 결정타를 안겼다.

반면 아피싯 현 총리는 시위사태의 조기 수습으로 국민에게 강한 지도력을 선보이며 국정 주도권을 쥐게 됐다.

탁신은 자신의 지지단체인 '독재저항 민주주의 연합전선'(UDD)이 지난달 26일 정부청사 주변을 봉쇄하고 반정부 시위와 농성을 시작한 이후 거의 매일 밤 농성장에 화상전화를 연결해온 국민이 전국에서 들고 일어나 현 정부를 전복시키는 '시민혁명'을 일으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독려로 UDD 시위대는 지난 8~9일 10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이게 됐고 급기야 11일에는 파타야에서 열릴 예정인 '아세안+3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무산시켜 아피싯 총리정부는 출범 5개월만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면서 일찌감치 '레임덕'으로 전락했던 아피싯 총리는 이때부터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는 파타야에 이어 12일에는 방콕 등 수도권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평화시위는 보장하겠지만 불법시위는 강경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아피싯 총리는 특히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누누이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면서 팽팽하던 민심은 아피싯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특히 UDD 시위대는 LP 가스 운반 차량과 LP 가스통을 들고 주민들을 위협하고 시장에 불을 지르려다 이를 말리는 상인들에게 총격을 가해 유혈사태가 발생하자 방콕 시민은 급격히 탁신에게 등을 돌렸으며 그 틈을 타 정부는 시위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다.

탁신은 과격시위로 방콕이 무법천지 상태가 되면 군부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쿠데타를 일으킬 빌미를 주고 경찰과 현정부내 동조자들도 군부의 개입을 돕게 될 것으로 판단했으나 이것이 그의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현지 신문인 '더 네이션'은 15일 "탁신은 태국을 볼모로 삼아 자신의 고국행과 자산동결 해제를 노렸다"면서 "그는 태국이 자신의 손바닥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쉽게 국왕의 사면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그를 비난했다.

반면 아피싯 총리는 은근과 끈기로 탁신의 패착을 노렸다가 적시에 군 병력을 끌어들여 인적 물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전시상황을 방불케 했던 시위사태를 비상사태 선포 3일만에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피싯 총리는 학자풍의 '풋내기 총리' 이미지에서 벗어나 리더십을 갖춘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쭐라롱콘 국립대의 티티난 퐁수디락 정치학 교수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피싯 총리는 큰 시련을 이겨냈으며 당분간 그가 정국을 주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방콕연합뉴스) 전성옥 특파원 sung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