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몰도바 우크라이나에서 발트3국 다게스탄 체첸까지….카스피해와 흑해 연안의 옛 소련 변경지대가 줄줄이 권력 공백 상태를 맞으며 극도의 정치적 혼란에 직면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이들 러시아 변방국가에 등장한 '집단 아노미(혼돈 상태)'의 배후로는 천연가스와 원유를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세계 간 파워게임이 지목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흑해 연안 그루지야에선 반정부 시위대가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사임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있다. 수도 트빌리시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경제정책 실패와 사카슈빌리 대통령의 인권 탄압을 비판하는 반정부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유럽 최후의 사회주의 국가로 불리는 몰도바에서도 최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져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보로닌 몰도바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의 배후에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루마니아 등 외세의 개입이 있다"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선거를 맞아 정치적 내분이 심각한 상태다. 율리야 티모셴코 총리는 친러시아 성향의 야당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고 있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은 "별다른 가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전망 속에 국가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추락했다. 카프카스 산맥 남쪽 다게스탄과 체첸,잉구셰티야 등 러시아 내 자치공화국들에선 러시아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돼 러시아 관리들에 대한 납치와 추방 등이 빈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러시아와 유럽대륙이 대면하는 거의 전 지역에서 정치적 혼돈 상태가 벌어진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이들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화됐고 글로벌 경제위기가 이들 지역을 강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EU는 지난 3월 정상회의에서 옛 소련연방국의 경제를 지원하는'동구 파트너십' 프로젝트를 통해 3억5000만달러를 지원키로 하는 등 이들을 서방권에 편입시키려 노력해왔다. 다음 달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에 옛 소련권 국가 정상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몰도바 등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대해 "조직적 약탈자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영 로시스카야가제타 등 신문들도 서방의 개입을 비난하며 옛 위성국들에서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