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전용기는 지난달 3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런던 상공에 도착했을 때 바로 공항에 착륙하지 못하고 선회를 해야만 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탄 '에어포스 원'을 비롯해 G20 회의 참석을 위해 도착한 다른 나라 정상들의 비행기들에 착륙 순번이 뒤로 밀린 탓이다.

비행기가 공항에 내려서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의 보잉 757 비행기는 주기장에서도 훨씬 큰 보잉 747 기종인 '에어포스 원'을 지나 '경의를 표하는' 거리를 둬야야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 G20 정상회의에 온 클린턴 장관이 이런 처우에서 최고로 중요한 사람과 그저 꽤 중요한 사람의 차이를 배우고 있다면서도 몸을 낮춘 클린턴의 영향력이 미 행정부 내에서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린턴은 지난 2개월간 미국의 최고 외교사절인 국무장관으로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각국 정상과 만나고 미국의 외교방침을 밝히는가 하면 열광적인 환대를 받기도 했지만 각국 정상들이 대거 모인 이번 G20 회의에서는 그 입지가 확연히 달라졌다.

신문은 이를 두고 클린턴이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사단의 보병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클린턴은 지난 1일 오바마와 영국 고든 브라운 총리, 러시아의 드리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중국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국무장관은 세계 경제.금융위기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는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참모도 아니다.

이번 회의에서 대통령의 오른팔은 경제 문제를 책임지는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다.

클린턴 장관은 G20 정상회의에 이어 프랑스-독일 접경도시 스트라스부르(프랑스)와 켈(독일)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와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미-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도 오바마 대통령을 따라갈 예정이다.

측근들은 클린턴이 오바마 대통령이 나타나는 자리에서는 대중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확실하다면서 클린턴이 자신의 비행기도 본국으로 돌려보낸 채 몇 안되는 참모진만 남겨뒀고 이제는 스스로를 대통령 참모진의 '넘버 원'으로만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클린턴 장관의 조직친화적이고 실용적인 접근법이 오바마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그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례로 클린턴 장관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의 인권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아 인권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것이 백악관과의 관계에서는 도움이 됐고, 그는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1일 정상회의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클린턴은 워싱턴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다.

측근들은 클린턴 장관이 매주 목요일 오후 열리는 대통령과의 정례 회의 외에도 매주 백악관에서 몇차례씩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신문은 클린턴이 출장을 다닐 때 그가 '보통' 국무장관이 아니라는 것이 항상 상기된다면서 이번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런던으로 갈 때 네덜란드 정부가 클린턴이 영부인이던 1994년 특별히 명명한 '힐러리 클린턴 튤립' 꽃바구니를 비행기내 기자단 자리에 놓아뒀으나 대부분의 취재진들이 꽃을 가져가는 바람에 바구니가 텅 비었다고 전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