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미국의 경기침체가 의식주 가운데 `주'의 양태를 바꾸어 놓고 있다.

경제 위기의 타격으로 직장과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텔을 전전하면서 생활하고 있는가 하면, 아예 텐트 집단 거주촌까지 생겨나고 있다.

과거 대공황때 홈리스들이 대거 늘어나면서 생긴 미국판 달동네 `후버빌'을 연상시키는 텐트촌은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를 비롯해 미 전역의 10여개 도시에 자그만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프레즈노의 홈리스 구제센터 운영요원인 폴 스택은 센터 맞은 편 도로위에 전에 볼수 없었던 텐트나 간신히 지붕만 달린 달개지붕집들이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구 50만명의 프레즈노시에서 이런 도로의 노숙자들은 무려 2천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부랑인들의 노숙은 로스앤젤레스나 뉴욕과 같은 대도시 외곽에서는 일상적 풍경의 일부였지만, 프레즈노를 비롯해 내슈빌, 올림피아, 세인트피터스버그 등과 같은 소도시에까지 가족단위의 텐트촌이 늘고 있는 것은 직장과 집을 잃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시애틀에는 시장의 이름을 딴 텐트촌에 100여명이 살고 있고,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의 텐트촌은 최근 오프라윈프리쇼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 졌다.

텐트촌은 낮엔 평온한 듯 보이지만, 밤이 되면 마약.매춘.폭력이 들끓는 무법지대로 변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지하경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미국 노숙인연합의 마이클 스툽스 위원장은 "새로운 후버빌 사람들은 점차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면서 문맹.알콜중독.정신병.마약중독 등으로 최악의 극빈층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NYT는 지난 10일 길바닥에서 숙식을 해결하지는 않지만 모텔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모텔 패밀리'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주로 중산층 밀집 지역 모텔에서 살고 있는데 경제 위기의 여파로 집이 압류되고 직장을 잃은 중산층들이 당장 갈곳이 없어지자 여관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문 시라큐스대를 졸업해 부동산 사업을 벌이며 풍족한 생활을 했던 그레그 헤이워스씨 가족도 6개월 전부터 모텔 생활을 해오고 있다.

헤이워스 씨는 경제위기 영향으로 작년 초 사업이 망한 데 이어 집마저 은행에 압류되자 아내와 세 자녀를 데리고 '코스타 메사'라는 여관의 침대 2개 딸린 방 한칸으로 쫓겨 왔다.

식사는 두 팀으로 나눠 교대로 하고 잠은 하루씩 침대와 바닥을 번갈아 양보하면서 잔다.

한 달 숙박비는 800달러.
신문은 이런 '모텔 패밀리'들이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에만 1천명을 넘어선다고 추산했다.

모텔은 과거에는 알코올 또는 약물 중독자들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컸지만 지금은 "사실상 저소득층의 집이 됐다"라고 자원봉사단체 '프로젝트 디그니티'의 왈리 곤살레스 대표가 말했다.

미국 정부도 이들 노숙자와 홈리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중이다.

지난달 미 의회를 통과한 경기부양책에도 노숙자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15억달러 상당의 지원금이 포함돼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텐트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우리같은 부자 나라에서 머리를 가릴 지붕도 없는 살아가는 아이들과 가정들이 있다는 사실은 용납할 수 없다"며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약속하기도 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