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그동안 경기 회복을 위해 FRB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여러차례 천명해왔습니다.버냉키 의장은 15일(현지 시간)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FRB가 대공황기에 수천 개의 은행 파산을 방치하고 돈줄을 조인 80년 전의 실수를 반복해선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대공황을 연구한 학자 출신 답게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인데요.오늘 나온조치들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FRB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상당히 줄어든 상황에서 고용사정 악화 등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약화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이같은 상황 인식에 따른 양적 완화 조치의 일환으로 10년 이상 장기 국채 매입을 포함해 FRB의 자산 규모를 더 늘리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FRB는 작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장기 국채 매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처음 밝힌데 이어,1월 FOMC 회의에서는 장기 국채를 매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했었습니다.이번에 규모와 매입 기간을 밝은 것은 경기를 살리겠다는 FRB의 강한 의지를 시장에 전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이날 약세를 보이던 뉴욕 주가가 급등세로 반전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당연히 장기 국채 금리는 급락했습니다.10년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전날에 비해 0.56% 포인트 폭락한 2.45%를 기록했습니다.하루 하락폭으로는 1987년 증시 대폭락 이후 최대 폭입니다.

FRB는 또 금년 중 패니메이 프레디맥 등 국책모기지회사가 발행한 증권을 7500억 달러 어치 추가로 매입하기로 했습니다.총 매입규모가 1조2500억 달러로 증가하는 것인데요,시장에서는 모기지 금리가 더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이밖에 FRB는 기간자산 담보부증권 대출 창구(TALF)의 담보 자격 요건을 완화해 금융사에 더 많은 자금을 풀기로 했습니다.

버냉키 의장의 말대로 FRB가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가능한 정책수단을 총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FRB가 달러 공급을 확대하기로 하면서 미 달러 가치는 주요국 통화 대비 크게 떨어졌습니다.유로화 대비 달러가치는 3.4%,엔화에 대해서는 2.4% 떨어졌습니다.당분간 달러 가치는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경기 회복 시점 장담 못해

장기 국채 매입 등 FRB의 초강수 대책의 명분은 다름 아닌 악화된 경제상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FRB는 실업,주택 등 자산가격 하락,신용경색이 소비자들의 심리와 지출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판매난과 자금조달 어려움으로 기업들은 재고와 고정자산 투자를 줄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게다가 미국 교역상대국들의 경기침체로 수출이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곤두박질치던 미국 경기가 조만간 바닥을 칠 것이란 월가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분석인데요.2월 주택착공이 전달에 비해 22% 늘고 소매 판매도 회복될 기미를 보이자 월가에서는 1분기 최악을 지나 조만간 경기가 바닥을 칠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FRB의 평가는 경기 회복 시점을 얘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게 나타났습니다.물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들과 재정 부양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점진적으로 회복시킬 것이라는 낙관론이 포함돼 있습니다.금융시스템 안정이 선행돼야 경제가 살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요.
경제는 심리에 많이 좌우되는 만큼 FRB의 이번 조치는 경제 주체들이 자신감을 갖도록 해 경제 회복 시점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하지만 양적 완화정책이 당장은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되겠지만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