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화 목소리는 점증하고

미국에서 부실 은행의 국유화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습니다.미국 주가는 관련 뉴스에 일희일비하고 있는데요.

국유화 논란을 다른 관점에서 정리하자면 미국 정부와 시장의 대결이라고 할만 합니다.시장에서는 결국 국유화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압력이 비등하고 있습니다.반면 정부는 조만간 은행의 부실을 제거할 수 있는 세부방안을 내놓겠다며 국유화에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최근 시장에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은행은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인데요.두 은행은 미국 상업은행들 가운데 대표주자이지만 부실자산이 불어나는 바람에 정부에서 이미 각각 45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았습니다.두 은행의 주가는 참담합니다.지난주말 씨티그룹 주가는 1.95달러로 곤두박질쳤습니다.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BOA의 경우 주가가 사상 최저치인 3.79달러를 기록했습니다.싯가총액이 190억달러로 쪼그라들어 지원받은 구제금융 액수보다 적습니다.케네스 루이스 BOA 회장은 “정부로부터 추가 자금을 지원받지 않아도 될 만큼 자본이 충분하고 유동성 상황도 양호하다”면서 국유화를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도 시장은 두 은행을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국유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에 이어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까기 가세했습니다.크리스토퍼 도드 미 상원 금융위원장은 한시적인 국유화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나서 국유화 논란을 키웠습니다.그는 국유화에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재무장관 스트레스도 커져

국유화 반대입장을 견지해 온 미국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섰습니다.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민간은행 시스템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재차 밝혔습니다.벤 버냉키 FRB의장은 “정부가 은행을 소유하면 은행 미래가 불확실해져 거래를 꺼리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고 반대했습니다.미 하원의 바니 프랭크 재무위원장도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내놓을 부실자산 처리 계획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시간을 더 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제적인 사업망이 광범위한 씨티그룹의 경우 국유화를 섣붇리 했다가 문제가 복잡해 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현재 씨티는 멕시코에서 자산순위 2위인 현지은행의 지배주주입니다.멕시코 정부는 외국정부가 자국 은행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조만간 예금 1000억달러 이상을 보유한 은행들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에 착수할 예정입니다.스트레스 테스트는 향후 부실이 커져도 정부 지원없이 버틸 수 있는 은행과,그렇지 않은 은행을 구분하자는 일종의 체력 테스트입니다.가이트너 장관은 부실자산 처리방안에 살이 붙으면 부실 은행문제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밝혀왔습니다.국유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이트너 장관이 이번에는 시장의 신뢰를 살 수 있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지금까지 미국 정부는 구제금융 투입,자금 조달용 은행채 보증,부실자산 보증,예금보장 등 갖가지 방식을 통해 부실은행을 지원했습니다.가이트너 장관이 실효성 있는 카드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최후의 카드는 국휴화 뿐이라는 게 시장의 시각입니다.

일부 미국 언론은 최악의 경우를 부실은행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량 예금 인출사태로 보고 있습니다.‘뱅크런(bank run)’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땐 꼼짝없이 정부가 국유화를 단행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