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향해 독설을 쏟아내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최근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9일 "이란과 수 개월 안에 직접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히자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곧바로 "상호 존중의 분위기가 유지된다면 미국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화답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미 제국주의가 종착점에 이르고 있다"고 외치며 반미의 선봉을 굳건히 지킨 그였지만 최근 그의 발언에서 미국을 비판하는 구절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영국 일간 가디언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변화는 오는 6월 12일 열리는 이란 대통령선거와 무관치 않다고 13일 보도했다.

이란 개혁파의 기수로 친서방 외교정책을 추구하는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의 지난 8일 출마 선언으로 강경 보수파인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압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대선 후보군 중 강력한 선두주자로 꼽히며 재선에 별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성과 젊은 층 사이에서 지지기반이 강한 하타미의 등장으로 재선 고지 점령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란의 많은 국민들은 현재 이란의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인플레이션과 고실업률이 서방을 향한 현 정부의 대결.갈등 위주의 외교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유엔의 경제제재가 아니었다면 석유, 가스 등 자원 대국인 이란의 경제상황이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게 전과는 다른 탄력적인 외교정책을 고려토록 만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하타미 전 대통령은 이미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난하며 공격의 포문을 열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코너로 몰아가고 있다.

하타미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지지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 정부의 외교정책이 이란의 국제적 고립을 초래했다"며 "이란은 국제적 압박과 고립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미국과 이란간 대화가 성사된다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입장에서는 서방과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외교정책이 탄력적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선거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보수 성향 지지자들의 이탈이 있을 수 있지만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상 심각한 수준에 이를 가능성은 적기 때문에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으로서는 미국과의 대화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의 최근 변화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 난국을 타개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6월 대선과 아무 관련 없다고 구분 짓긴 어렵다.

어찌됐든 서방 진영은 그의 변화를 반가워하며 다음의 행보를 기대하고 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