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내용이군요. "지난달 31일 유럽연합(EU) 5개국 순방 마지막 방문국인 영국으로 향하면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미국 국채를 계속 살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곤 "투자가치가 있으면 살 것"이라고 냉랭하게 밝혔다. 중국이 미 국채를 사주느냐 마느냐는 '미국 하기에 달린 것'이란 으름장이다. 국채 발행 외엔 구제금융 및 경기 부양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미국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 셈이다. 평소 간접 화법을 즐기는 원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며 직설적으로 얘기한 것은 그만큼 양국 간 감정의 골이 깊다는 방증이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한 데 대해 중국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에서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중국이 글로벌 경제를 구해야 한다는 '중국 구세론(救世論)'을 말하면서 뒤돌아선 '범죄국' 취급을 하는 데 대한 불만이다. 해외 전문가들도 이번 미국의 '도발'에 부정적이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환율 문제는 현재 핵심 이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자살을 충고하는 것"이라며 "경기 후퇴에 빠진 나라가 자발적으로 통화 가치를 절상한 예를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관영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의 차오훙후이 연구원도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이 미 국채를 계속 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역수지 흑자를 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5개월 연속 미 국채를 사들이며 작년 11월 말 현재 6891억달러어치를 보유,세계에서 미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다. 미 정부의 국채 발행액 5조8000억달러의 11.7%에 달한다. 중국 외환보유액의 35%가량을 미 국채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엔 국채 발행이 경제 회복을 위한 자금 마련의 거의 유일한 통로다. 올해도 2조달러가량의 국채를 추가 발행해야 하는 판에 중국이 국채를 사주지 않으면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중국 내에선 수출이 급감하면서 위안화 가치를 더 떨어뜨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것을 보면 평가절상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지는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중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며 환율정책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