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무역과 노동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자국 산업과 국민들의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경제 국수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무역에 역행하는 조치가 확산되고 교역이 감소하면서 세계경제 침체는 가속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작년 9월 이후 새 무역규제 19건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는 지난해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심각해진 이후 세계 16개국이 모두 19건의 보호무역 조치를 새로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인상하거나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국가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WTO가 최근 긴급조사를 벌인 결과 인도 러시아 한국 등 6개국이 관세를 인상했다. 에콰도르는 940개 품목의 관세를 일제히 올렸고,우크라이나는 일부 품목에 대해 13%의 추가 관세를 임시로 부과하고 있다. 한국은 원유 관세를 1~3% 올렸다. 수입장벽을 설치한 나라도 2개국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자동차부품과 TV 등의 수입에 사실상 허가제를 도입했으며,인도네시아는 의류와 완구 등을 수입할 수 있는 항만과 공항을 제한했다.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 등을 신설한 나라도 10개국에 달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 등 '빅3' 자동차업체에 대한 미국 정부의 융자와 항공 철강 자동차 산업 등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금융지원 등이 포함됐다. 중국이 자동차세를 낮춰 사실상 구입 보조금을 준 것과 한국이 자동차 부품업체에 대해 세금 감면 조치를 한 것 등도 국내산업 보호조치로 거론됐다. 노동장벽과 관련해 말레이시아는 최근 일부 산업에서 외국인 근로자의 취업을 금지시켰다.

WTO는 지난 주말 스위스 다보스에서 18개 주요 회원국들이 참가한 가운데 비공식 각료회의를 열고 보호무역 확대를 막기 위해 새로운 감시체제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미 '바이 아메리칸' 우려

이번 WTO 각료회의에선 미국 경기부양법안에 포함된 '바이 아메리칸' 조항에 대한 각국의 우려와 불만이 쏟아졌다. '바이 아메리칸'이란 대규모 공공건설에 미국산 제품 사용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말한다. 각국 대표들의 비난에 피터 올가이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대행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도 지난달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는 논란이 되고 있는 조항을 재검토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문제 조항에 대한 모든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오바마의 8250억달러 경기부양 패키지에 포함된 이 조항은 미국에 연간 60억달러의 철강재를 수출하는 캐나다에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WTO 법규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하원 연설에서 지적했다. 캐나다의 정치 지도자들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캐나다는 예외적인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촉구하고,2월19일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캐나다 방문 시 집중적으로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자국 내 자동차 산업을 지원하는 미국의 조치를 '보호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이런 조치가 오래가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독일도 제너럴모터스의 자국 내 사업부문인 오펠에 대해 18억유로의 조건부 지원을 약속했다. 이 밖에 영국은 자국 자동차업계 채무를 보증하고 있으며,프랑스 정부는 국내 자동차업체 지원을 위해 60억유로 투입을 준비 중이다.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은 앞서 153개 회원국들에 배포한 보고서에서 각국의 잇따른 구제금융 조치들이 불공정 교역을 초래해 무역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박성완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