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이스라엘군에 무참하게 짓밟힌 무장정파 하마스는 재기할 수 있을까.

1987년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기치로 무장 게릴라 활동을 시작한 하마스는 이번 전쟁으로 창설 이후 사상 최대 피해를 입었다.

우선 서열 3위인 사이드 시암 내무장관과 서열 5위 니자르 라이얀 등 최고위급 지도자들이 공습으로 잇따라 숨을 거두면서 하마스는 지휘체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암살 위험을 피해 시리아에 망명 중인 칼리드 마샤알 최고 지도자가 원거리 지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핵심 간부들의 사망은 하마스에는 뼈아픈 손실일 수 밖에 없다.

가자지구 내 본거지로 사용됐던 건물들은 이스라엘 전투기로부터 초정밀 폭격을 당해 남아난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수단인 로켓포탄 등 각종 무기도 3주 넘게 계속된 교전으로 거의 바닥이 난 상태다.

무기 밀수의 주 경로였던 남부지역 땅굴들이 집중 폭격받은데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정책은 여전히 서슬퍼런 상태여서 가자지구 내 무기 반입은 이제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돼 버렸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도 17일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하면서 "가자지구 전쟁의 목표가 초과 달성됐다"며 "하마스의 무장조직이나 정부기구가 심각한 타격을 받아 이스라엘 쪽으로 로켓탄을 발사하기가 극히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인명 피해와 무기 고갈 외에 하마스에 더욱 결정적인 손실은 구겨져 버린 자존심이다.

잃어버린 팔레스타인 땅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하마스는 2007년 6월 온건파 파타 세력을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장악하며 기세를 올렸으나 이번 전쟁에서는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못해 보고 휴전을 맞게 됐다.

완전 궤멸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게 된 점을 감안할 때 선전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하마스를 측면 지원해 온 이란과 시리아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참패에 가까운 이번 결과가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과 휴전을 연장하지 않고 로켓공격을 계속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더니 사망자가 1천200명에 이르는 순간까지 하마스는 무엇을 했느냐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핵심 지도부는 타격을 입고, 무기도 고갈되고, 무장대원들의 사기마저 떨어진 고립무원의 하마스에 재기의 희망은 존재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하마스가 궤멸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직 재정비 시기를 거쳐 다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재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현재로서는 하마스 외에 가자지구를 통치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이 없기 때문에 하마스가 가자를 기반으로 세를 키워나갈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하마스 세력이 약해졌다고 해서 예전처럼 온건파인 파타 계열이 가자지구를 다시 장악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면서도 온건파에 대한 향수보다는 오히려 강경파에 동정심을 느끼며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또 다른 강경 정파 `이슬람 지하드' 지도자 샬라흐 라마단은 "어떤 팔레스타인 정파도 이스라엘 탱크를 타고 가자에 들어오는 한 반역자 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며 가자지구 내 민심을 전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종구 특파원 iny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