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석학 인터뷰] (5ㆍ끝) 리샹양 中 세계정치경제硏 부소장‥지금은 국제공조로 '새로운 질서' 찾을때
▼위기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해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아직 안정되지 못한 휴화산이다. 금융위기가 여기서 시작됐지만,아직 확실하게 불씨가 꺼지지 않은 것 같다. 또 실물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미국이 작년 3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데 일정기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이다. "
▼중국은 금융위기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꼽히는데.
"안전은 상대적 개념이다. 중국의 상황도 그다지 낙관적이진 않다. 수출이 줄어들고 많은 기업들이 어려워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 경제에 있어 개혁 · 개방 때만큼이나 중요한 시기다. 지난 30년간의 패러다임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이곳 저곳 아픈 곳이 나타나듯이 지금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가 돌출하고 있다. 지금은 이를 바꿔 나갈 수 있는 기회다. "
▼무엇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인가.
"예를 들어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기업에 대한 똑같은 지원은 반대한다. 기업의 파산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그렇다고 저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과 산업은 도태시키고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첨단 산업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제2의 개혁 · 개방을 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
▼대학 졸업생 등을 감안하면 올해 중국에선 2400만개의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현실이 너무 급박하지 않은가.
"구조조정을 수반하지 못한 경제 성장은 큰 의미가 없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꼭 11년이 지난 2008년에 금융위기가 왔다.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얻은 교훈으로 전 세계가 새로운 질서를 창출했다면 오늘의 위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거품 붕괴,아시아 외환위기 등은 세계 경제의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지만 대부분 현상을 치유하는 수준에서 만족했다.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지 못했고 이는 다시 위기로 이어졌다. 값비싼 교훈이 현실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새로운 질서란 어떤 모습인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긴 어렵다. 다만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모럴 해저드를 용인하던 국제 금융감독 체계 등은 사라져야 한다. 그 자리를 대신해 안전을 지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에너지를 고갈시키거나 환경을 망가뜨리면서 얻고 있는 편리함도 필요하다면 버려야 한다. 그런 것을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새로운 질서다. "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초강대국이 될 것이란 시각도 새로운 질서에 포함되나.
"지금은 누가 누구를 이기고 말고를 따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국제 공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중국이 미 국채를 계속 사들이는 것과 관련해 그런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이 미 국채를 계속 사는 것은 미국을 도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재정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제난을 이길 수 없고,그러면 이는 곧 중국의 위기가 된다. 물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는 것은 기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달라진다는 걸 뜻한다. 어떤 형태로 변하는 것이 최선이냐 하는 것을 모두 고민해야 한다. "
▼중국이 해외 자원을 적극적으로 사들이면서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의 입장에선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금융위기는 자산 가격을 떨어뜨렸고,외환 보유액이 많은 중국으로서는 해외 기업을 인수 · 합병하거나 해외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찬스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하는 리스크를 극복해 낼 능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해외 투자에서 많은 손실을 본 경험이 있다. 리스크를 간과했던 탓이다. 따라서 좋은 기회라고 해서 무작정 사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불어 해외 금융회사 등을 인수 · 합병해서 영향력을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몇 가지 자원을 사들이는 것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차원이지 영향력을 늘리려는 것은 아니다. "
▼위안화 블록이 형성되는 등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사실 아닌가.
"일부 국가와 위안화를 무역 결제 통화로 쓰기로 한 것은 달러화 불안 때문이지 위안화의 영향력 확대가 목적이 아니다. 기축 통화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그런 점에서 준비가 안 돼 있다. 당장 시스템이 문제 없이 가동되고 최소한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위안화 기축 통화론은 한참 앞서가는 이야기다. "
▼중국 정부는 올해 성장 목표를 최소 8%로 잡았다. 달성 가능하다고 보나.
"가능하다.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내수 진작 쪽으로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에서 4조위안(약 800조원)을,지방 정부에선 더 많은 돈을 내수 부양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중복 투자나 과잉 투자를 방지해야 한다. 다행히 농촌 등에 대한 투자를 집중적으로 늘린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이것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질적 발전 없이 성장률 목표만 달성한다면 무의미한 일이다. "
▼자산 시장이 침체된 상태에서는 내수 부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확실히 중국 경제가 당면한 주요 문제다. 경제는 심리도 매우 중요하다. 주가가 60~70% 떨어지고,부동산 값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를 크게 늘리는 것은 어렵다. 당장 소비를 50% 늘린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꾸준히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는 결국 시장에 안정감을 회복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인내와 절제가 요구되는 시기다. "
▼중국 정부로선 위안화 환율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위안화 환율은 시장에 맡기는 게 최선이다. 일부에서 의도적으로 위안화 약세(환율 상승)를 유도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사실과 다르다. 환율을 높여 수출을 늘린다는 임기응변적 정책은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 시장 기능에 맡겨야 기업의 자생력도 강해진다. 위안화 가치가 낮으면 수출하고,높으면 수출을 못 한다면 그 기업은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진정으로 강해지기 위해선 기업들의 생존력과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이 커져야 한다. "
▼농민공 귀향 등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이 안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다. 대졸 실업자도 어려운 숙제다. 당장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가져오긴 어렵다. 만일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면 여러 사회 갈등을 낳을 것은 자명하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 올해 모든 나라가 실업이란 문제로 씨름해야 할 것이다. 변화를 통한 새로운 질서의 창조는 그래서 중요하다. 현상을 치유하겠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답답하기만 하지만,기존의 틀을 부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면 길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 리샹양은…
리샹양(李向陽) 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 부소장(47)은 중국 소장파 경제학자의 대표 격이다. 사회과학원은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다. 국제 경제가 전공 분야로 글로벌 경제 체제와 중국 경제발전 전략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자주창신(自主創新 · 중국만의 새로운 기술과 브랜드)을 키워드로 한 중국형 모델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자주 이론'을 외치고 있다. 금융 산업을 바탕으로 선진국들이 강력한 부(富)를 축적하던 시기는 끝났고 이젠 환경과 에너지가 새로운 주축 산업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중국 현대재정금융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과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경제 질서'가 최근 연구 주제다. 주요 저서로는 2002년부터 매년 출판하고 있는 《세계경제 형세의 분석과 전망》 시리즈 및 《글로벌화와 세계 경제》 《기업과 시장 제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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