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중국도 위기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베이징 창안제에 있는 사회과학원에서 만난 리샹양 세계정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지금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지혜를 발휘해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계 금융위기가 요구하는 것은 변화인데 현상을 치유하는 데 급급해선 안 된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위기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올해 위기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미국 부동산 시장은 아직 안정되지 못한 휴화산이다. 금융위기가 여기서 시작됐지만,아직 확실하게 불씨가 꺼지지 않은 것 같다. 또 실물 경제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미국이 작년 3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했는데 일정기간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쉽지 않은 해가 될 것이다. "


▼중국은 금융위기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꼽히는데.

"안전은 상대적 개념이다. 중국의 상황도 그다지 낙관적이진 않다. 수출이 줄어들고 많은 기업들이 어려워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 경제에 있어 개혁 · 개방 때만큼이나 중요한 시기다. 지난 30년간의 패러다임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이곳 저곳 아픈 곳이 나타나듯이 지금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가 돌출하고 있다. 지금은 이를 바꿔 나갈 수 있는 기회다. "


▼무엇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인가.

"예를 들어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급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기업에 대한 똑같은 지원은 반대한다. 기업의 파산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그렇다고 저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산업 구조의 고도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과 산업은 도태시키고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첨단 산업 등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제2의 개혁 · 개방을 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


▼대학 졸업생 등을 감안하면 올해 중국에선 2400만개의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현실이 너무 급박하지 않은가.

"구조조정을 수반하지 못한 경제 성장은 큰 의미가 없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꼭 11년이 지난 2008년에 금융위기가 왔다.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얻은 교훈으로 전 세계가 새로운 질서를 창출했다면 오늘의 위기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거품 붕괴,아시아 외환위기 등은 세계 경제의 시스템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지만 대부분 현상을 치유하는 수준에서 만족했다.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지 못했고 이는 다시 위기로 이어졌다. 값비싼 교훈이 현실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


▼새로운 질서란 어떤 모습인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긴 어렵다. 다만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모럴 해저드를 용인하던 국제 금융감독 체계 등은 사라져야 한다. 그 자리를 대신해 안전을 지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에너지를 고갈시키거나 환경을 망가뜨리면서 얻고 있는 편리함도 필요하다면 버려야 한다. 그런 것을 받아들이는 시스템이 새로운 질서다. "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나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초강대국이 될 것이란 시각도 새로운 질서에 포함되나.

"지금은 누가 누구를 이기고 말고를 따질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국제 공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 극복은 불가능하다. 중국이 미 국채를 계속 사들이는 것과 관련해 그런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이 미 국채를 계속 사는 것은 미국을 도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미국이 재정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제난을 이길 수 없고,그러면 이는 곧 중국의 위기가 된다. 물론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는 것은 기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달라진다는 걸 뜻한다. 어떤 형태로 변하는 것이 최선이냐 하는 것을 모두 고민해야 한다. "


▼중국이 해외 자원을 적극적으로 사들이면서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의 입장에선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금융위기는 자산 가격을 떨어뜨렸고,외환 보유액이 많은 중국으로서는 해외 기업을 인수 · 합병하거나 해외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찬스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하는 리스크를 극복해 낼 능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해외 투자에서 많은 손실을 본 경험이 있다. 리스크를 간과했던 탓이다. 따라서 좋은 기회라고 해서 무작정 사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불어 해외 금융회사 등을 인수 · 합병해서 영향력을 키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몇 가지 자원을 사들이는 것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차원이지 영향력을 늘리려는 것은 아니다. "


▼위안화 블록이 형성되는 등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사실 아닌가.

"일부 국가와 위안화를 무역 결제 통화로 쓰기로 한 것은 달러화 불안 때문이지 위안화의 영향력 확대가 목적이 아니다. 기축 통화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그런 점에서 준비가 안 돼 있다. 당장 시스템이 문제 없이 가동되고 최소한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위안화 기축 통화론은 한참 앞서가는 이야기다. "


▼중국 정부는 올해 성장 목표를 최소 8%로 잡았다. 달성 가능하다고 보나.

"가능하다.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내수 진작 쪽으로 방향을 돌렸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에서 4조위안(약 800조원)을,지방 정부에선 더 많은 돈을 내수 부양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물론 주의할 점도 있다. 중복 투자나 과잉 투자를 방지해야 한다. 다행히 농촌 등에 대한 투자를 집중적으로 늘린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이것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질적 발전 없이 성장률 목표만 달성한다면 무의미한 일이다. "


▼자산 시장이 침체된 상태에서는 내수 부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확실히 중국 경제가 당면한 주요 문제다. 경제는 심리도 매우 중요하다. 주가가 60~70% 떨어지고,부동산 값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를 크게 늘리는 것은 어렵다. 당장 소비를 50% 늘린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꾸준히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는 결국 시장에 안정감을 회복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인내와 절제가 요구되는 시기다. "


▼중국 정부로선 위안화 환율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위안화 환율은 시장에 맡기는 게 최선이다. 일부에서 의도적으로 위안화 약세(환율 상승)를 유도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사실과 다르다. 환율을 높여 수출을 늘린다는 임기응변적 정책은 한계가 너무 분명하다. 시장 기능에 맡겨야 기업의 자생력도 강해진다. 위안화 가치가 낮으면 수출하고,높으면 수출을 못 한다면 그 기업은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중국 경제가 진정으로 강해지기 위해선 기업들의 생존력과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이 커져야 한다. "


▼농민공 귀향 등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이 안고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다. 대졸 실업자도 어려운 숙제다. 당장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를 가져오긴 어렵다. 만일 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면 여러 사회 갈등을 낳을 것은 자명하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마 올해 모든 나라가 실업이란 문제로 씨름해야 할 것이다. 변화를 통한 새로운 질서의 창조는 그래서 중요하다. 현상을 치유하겠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답답하기만 하지만,기존의 틀을 부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생각을 가지면 길은 의외로 쉽게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 리샹양은…

리샹양(李向陽) 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 부소장(47)은 중국 소장파 경제학자의 대표 격이다. 사회과학원은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다. 국제 경제가 전공 분야로 글로벌 경제 체제와 중국 경제발전 전략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자주창신(自主創新 · 중국만의 새로운 기술과 브랜드)을 키워드로 한 중국형 모델로 글로벌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는 '자주 이론'을 외치고 있다. 금융 산업을 바탕으로 선진국들이 강력한 부(富)를 축적하던 시기는 끝났고 이젠 환경과 에너지가 새로운 주축 산업이 될 것이란 주장이다. 중국 현대재정금융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과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경제 질서'가 최근 연구 주제다. 주요 저서로는 2002년부터 매년 출판하고 있는 《세계경제 형세의 분석과 전망》 시리즈 및 《글로벌화와 세계 경제》 《기업과 시장 제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