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분기 마이너스 성장 우려도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가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 방안을 발표하자 환호했던 투자자들이 점차 부작용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은 다시 변동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구제금융 재원 마련 과정에서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미 재무부는 2008 회계연도(2007년10월~2008년9월)의 재정적자를 3894억달러로 추산했다. 작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내년에는 적자폭이 불어나 482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지만,최근 발표된 대규모 금융구제에 따른 예산 쓰임새에 비춰 재정적자는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 재정적자가 구제금융 여파로 1조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경제학자들이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재정적자는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22일(현지시간) 미 달러화 가치는 유로당 1.4808달러로 거래돼 2.3% 급락했다.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된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일본 엔화에 대해서도 1.9% 하락했다. 맷 제만 라살리포춘그룹의 수석시장전략가는 "정부의 빚이 늘어나면 달러가치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달러 가치와 반대로 움직이는 성향이 있는 국제유가와 금 가격은 치솟았다. 이날 금 값은 5.1% 급등해 909달러에 마감했다. 상품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경우 그동안 잠잠하던 인플레이션 악령이 되살아날 수 있다.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마크 잔디 무디스이코노미닷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미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경기침체는 2001년 이후 처음이다. 신용공황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 해소된 가운데 고개를 든 경제에 대한 우려는 이날 주가와 채권 값을 동시에 끌어내리는 기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은행들은 대출을 꺼리면서 '생존 모드'로 들어갔다. 신용을 확대하기보다는 돈을 움켜쥐고 있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들은 집값 하락과 얼어붙은 고용사정으로 인해 지갑 열기를 꺼리고 있다. 뉴욕에 있는 쇼핑센터국제위원회의 집계에 따르면 미 소매판매 성장률은 6주 연속 둔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데이비드 위스 S&P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빚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소비위축 현상이 확산되면 기업들의 수익성도 떨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하 카드를 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제금융 정책조차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켜 줄 유일한 수단이 금리인하란 것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