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철군을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대립이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힘겨루기로 번지고 있다. 그루지야 사태로 촉발된 신냉전이 세계 경제질서에도 파장을 일으키는 모습이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25일 각료회의에서 "러시아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합의한 일부 약속들을 파기해야만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그루지야 철군 압박용으로 러시아의 WTO 가입 저지 카드를 꺼내들자 러시아는 오히려 WTO 가입에 앞서 기존 회원국들과 체결한 양자협정 가운데 일부를 무효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러시아의 이런 제스처는 WTO 가입 거부는 아니지만 사실상 '가입 거부로 갈 수도 있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란 해석이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 의회가 그루지야 내 친러 성향의 남오세티야 및 압하지야 공화국 독립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자 "그루지야 내 두 자치공화국의 운명은 어느 한 국가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이로 인해 러시아가 WTO 가입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연합(EU)과 주요 7개국(G7) 등도 러시아의 조치에 유감을 표명하며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결의안 서명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양극 간 냉전 기류도 격화되는 양상이다. 미국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함정이 그루지야에 대한 구호물자 제공을 명분으로 러시아 해군 함대가 주둔 중인 흑해에 잇따라 진입하고 있어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나토 병력의 보급선 차단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자밀 카불로프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날 영국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주 나토와의 군사 협력을 중단한 만큼 보급선 제공 협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토 주둔군은 파키스탄으로 통하는 기존 보급선이 탈레반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자 대안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로 통하는 북부 보급선을 활용키로 지난 4월 러시아 측과 합의한 바 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