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크렘린궁의 주인이 바뀌는 러시아에서는 자국의 문장인 쌍두(雙頭) 독수리와 꼭 닮은 체제가 탄생한다.

2000년부터 8년간 러시아를 이끌었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물러나 총리가 되고,그의 후계자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3)가 새 러시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메드베데프 대통령-푸틴 총리'라는 사상 초유의 정치실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통령 얼굴만 바뀌는 형식상의 '정권교체'가 될지,아니면 메드베데프 시대가 새롭게 열릴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하지만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권위주의를 강조했던 푸틴과 비교해 메드베데프는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러시아 정계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란 예측이 많다.

메드베데프는 1991년 공산주의 소련의 해체와 시장경제의 태동을 경험한 세대인 '486세대(40대ㆍ1980년대 학번ㆍ1960년대생)'로 분류된다.1965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드베데프는 1982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법대에 진학한 후 당시 소련 정부가 금지했던 디프 퍼플 등 하드록 밴드에 심취했다.영어도 상당히 능통하다. 그러면서도 콤소몰(공산주의청년동맹)이나 콜호스(집단농장) 지원 활동을 거부한 적은 없었다.이처럼 자유주의 성향이 강하면서도 국가 체제에는 철저히 순응하며 성장한 메드베데프였기에 대통령이 된 그가 향후 어떤 정치적 행보를 나타낼지 예측하기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푸틴은 지난 3월 러시아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메드베데프는 나 못지않은 민족주의자로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메드베데프의 정치 인생은 푸틴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메드베데프는 법학박사 학위를 갓 취득한 1990년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보좌관이던 대학 13년 선배인 푸틴을 만나 정책 조언자 역할을 하게 된다.푸틴과 메드베데프는 고향도 같다.

이후 푸틴이 총리가 되자 메드베데프는 내각 사무실장으로,대통령이 되자 크렘린 행정실장으로 따라다니며 푸틴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2000년 거대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의 이사회 의장직에 임명됐으며,2005년 11월엔 제1부총리로 발탁됐다.메드베데프는 푸틴의 충성스러운 가신(家臣)이었던 셈이다.

메드베데프는 대통령 당선 이후 법치주의를 강조했다.3월 말 대선 승리 후 처음으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법의 지배를 정착시키고 부패를 없애기 위해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다지겠다"며 "법에 의해 정당한 사유재산권과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이에 앞서 지난 2월엔 크라스노야르스크 경제포럼에서 "공무원 수를 줄이고 정부 업무의 일부를 민간에 넘기겠다"며 "기업에 대한 세금 부담도 낮춰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취임 이후에도 메드베데프가 넘어야 할 정치적 벽은 여전히 높다.특히 푸틴과의 밀월 관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다.푸틴의 총리 임명 동의안은 취임식 다음 날인 8일 러시아 의회에서 통과될 예정이다.아울러 푸틴은 이미 지난달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의장직에도 올랐다.

러시아 최대 정파인 민족주의와 반(反) 서방 성향이 강한 '실로비키'(정보기관ㆍ군ㆍ검찰 출신들)의 견제도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실로비키는 푸틴의 핵심 지지세력으로 지난해 12월 푸틴이 메드베데프를 후계자로 지명할 당시 강력하게 반발했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