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는 한국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그것도 남북한을 두루 닮았다.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얄타에서 만난 스탈린과 처칠은 그리스만 자유진영으로 빼고 발칸 거의 전 지역을 철의 장막 안쪽에 편입시켰다.

허리가 잘린 한반도 처리과정과 흡사했다.

공산주의 진영에 속했지만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와 유고의 티토,북한 김일성은 독자노선을 추구했다.

이들은 서로 친했다.

특히 1970년대 북한을 방문했던 차우셰스쿠는 평양 인민궁전을 그대로 본떠 미국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인 인민궁전(방1950개)을 부쿠레슈티에 지었고 루마니아판 주체사상을 내세워 철권통치를 했다.

차우셰스쿠는 독자노선에 몰입하다가 경제를 파탄냈다.

그의 통치기간 중에 태어난 아이들의 평균 키가 부모세대보다 작을 정도로 굶주린 국민들은 1989년 시위를 벌였고 군경의 발포로 1000여명이 죽었다.

차우셰스쿠는 쫓겨나 처형당했지만 구공산당을 주축으로 한 구세력의 저항 등으로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서유럽에 인접한 동구권 국가들에 비해 개혁에 뒤처졌다.

하지만 일반국민들은 시장친화적 개혁개방을 줄곧 지지해왔다.

이에 힘입어 집권한 우파 민주당 출신의 트라이얀 바셰스쿠 대통령은 지난 4월20일 야당인 사회민주당의 탄핵을 받아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었지만 국민투표에서 대통령직을 전격적으로 회복했다.

당시 "바셰스쿠 대통령이 2006년 9월 루마니아를 국빈방문한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사진)으로부터 야당 탄핵을 극복하는 노하우를 배웠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