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재무장관 자문관인 에릭 피터스가 벌떡 일어서더니 내각 조직도를 기자가 앉아 있던 테이블로 가져왔다.

"보십시오. 장관이 15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전 정부에선 30명을 넘었죠."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장관 수를 전 정부의 절반인 15명으로 줄였다는 보도를 믿기 어려웠다.

한두 명의 장관도 아니고 손만 대면 늘어나는 게 정부 조직인데. 피터스 자문관에게 어느 장관을 어떻게 줄였는지 설명해 달라고 재촉하자 조직도를 내놓은 것이었다.

찬찬히 살펴봤다. 장관 수는 준 게 분명했다. 자크 시라크 전 정부에서 내각은 '16장관·15임명장관' 체제였다. 일반 장관이나 임명장관은 모든 국무회의에 출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피터스 자문관 말대로 사르코지 정부 들어서 그런 장관이 15명으로 준 게 사실이었다. 다만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사안이 논의될 경우에만 국무회의에 출석할 수 있는 국무장관(Secretary of State)이 새로 17명 임명됐다. 예를 들면 현직 럭비 국가대표팀 감독인 베르나르 라포테가 청년·스포츠 담당 국무장관이 됐다. 그런 장관 17명을 합친다면 한국 언론에 보도된 대로 장관이 절반으로 준 것은 아니다. 기자가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짓자 피터스 자문관은 퇴직하는 공무원 두 명 중 한 명만 채용하겠다는 감축 계획을 들고 나왔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5월16일 취임한 후 예고했던 내용을 실행하겠다는 의지였다.

인력 감축 계획은 피터스 자문을 만난 지 1주일 후인 지난 3일 프랑스와 피용 총리의 기자회견으로 구체화됐다. 내년에 퇴직하는 공무원 중 2만2700명을 채우지 않겠다는 것. 당초 사르코지 대통령이 밝혔던 두 명 중 한 명 감축보다는 적은 숫자다. 계획대로라면 3만5000명에서 4만명의 자리를 채우지 않아야 한다. 공무원 노조의 반발을 의식해 다소 축소됐다. 그래도 올해 감축 인력보다는 거의 배 가까이 많은 규모다. 가장 많이 줄어들 곳은 교육부다. 프랑스는 초·중·고교,대학 할 것 없이 교사와 교수들이 모두 공무원이다. 교육 공무원은 120만명을 넘어선다. 교원 노조의 힘도 막강하다. 이들의 파업도 잦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년 한 해만 은퇴하는 교육 공무원 중 3만5000명 정도가 충원되지 않는다. 실제 감축 규모는 여기에 못미치지만 그마저도 노조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미국 휴양지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는 사르코지가 그들의 반발을 누르고 끝까지 감축 조치를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피터스 자문관은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감축 계획을 밀어붙이겠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이 프랑스 정부도 행정 서비스가 느린 편이다. 정부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위해 비서와 연락하는 과정에서 금방 보내준다는 이메일이 몇 시간을 넘겨 애를 태웠다. KOTRA 파리 무역관의 이규선 부관장은 "전시회 부스를 준비하기 위해 설치 계획을 알려 달라고 수없이 요청했지만 행사 시점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받지 못하고 있다"며 느린 행정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비효율이 얼마나 고쳐질지 주목된다.

인력 감축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프랑스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189억달러어치의 세금 감면을 단행,올해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5%를 넘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크리스틴 라가드 재무장관은 올해 2.4%로,내년에는 2.3%로 줄일 것이라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사회복지도 적자 신세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을 제외하고 줄곧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노령화 탓이다. 지난해 건강보험 적자도 81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재정 빈곤을 보충하기 위해 부가가치세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EU 27개 회원국 중 유로화를 사용하는 13개 국가들이 재정 균형을 위해 1999년 도입한 '안정·성장협약'을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 협약은 중기적으로 재정을 균형 또는 흑자로 유지토록 하고 적자 규모가 GDP의 3%를 넘을 때 제재토록 하는 내용이다. 프랑스는 이 협약에 따라 2010년까지 균형 재정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달성이 어려워지자 사르코지 대통령이 균형 시점을 2012년으로 2년 연장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독일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해 2.8%의 높은 성장 덕에 GDP 대비 재정적자가 1.7%로 낮아졌다. 그럼에도 수건을 쥐어짜고 있다.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었는데 버스 트럭에는 받기 시작했고 주별로 다르긴 하지만 공짜이던 대학도 학기당 600~800유로를 받는다. 전액 무료이던 병원도 마찬가지다. 입원할 경우 침대시트 세탁 비용을 받고 약을 탈 때도 일정액의 수수료를 징수한다. 일반 국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공짜이던 나라에선 작은 돈이라도 받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유럽 대륙에서 군살을 빼는 작업이 시작됐다.

런던·파리·프랑크푸르트=고광철 국제부장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