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찰기보다 더 신뢰를 받았던 여간첩'
중국 신화통신사에서 발행하는 자매지 참고소식(參考消息)은 3일 아버지를 이어 대륙에서 정보원 생활을 했던 한 대만 여성의 생애를 소개했다.

주된 내용은 대만의 중국시보(中國時報)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자샤오제(賈小姐)라는 가명으로 등장하는 이 여성은 정보장교 출신으로 역시 중국 윈난(雲南)지역을 무대로 활동했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첩보세계에 대한 무용담을 많이 듣고 자랐다.

이런 영향으로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대만의 군정국에 지원했다.

신청서는 군정국 출신이었던 부친이 직접 가져다 준 것이었다.

정보간부반에서 2년 반 훈련을 받은 그는 바로 대륙에 파견돼 장기간 암약했다.

그는 대만 군정국이 대륙진입 정책을 만든 뒤 대륙에 파견한 첫 여성 정보원이자 여성으로서 가장 오래 대륙에서 암약한 기록을 갖고 있다.

기업 주재원 신분으로 위장해 대륙에 파견된 그는 대만 매체들의 하이난(海南) 방문취재를 주선하는데 성공하면서 군정국이 수차례 하이난 정탐 임무를 수행하는 임무를 부여했을 정도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이런 그를 놓고 군정국 주변에서는'정보원으로 타고났다'고 호평했다.

대만 군정국은 하이난 공작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린 그를 중국 동남부 연해지역의 요지 푸저우(福州)로 옮겨 거점을 구축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양안의 군사대치로 당시 군정국에서는 최전선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가 절실했던 터였다.

그는 푸저우에 도착한 뒤 신분 세탁과 정보망 구축을 위해 같은 군정국에 소속돼 있던 남편까지 불러들였다.

그는 푸저우에서도 동분서주했다.

제일 자주 찾아간 지역은 핑탄(平潭)이었다.

그곳에서는 대만의 상륙에 대비해 매년 군사훈련을 벌이는 인민해방군 군사기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핑탄은 중국이 대만에 파견하는 공작원의 침투 통로이기도 했다.

그는 고급 속옷 선물을 미끼로 조직폭력배 두목의 '여인'들을 포섭하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이 지역에 정보망을 구축해 나갔다.

이런 노력의 결과 그는 공중정찰기가 촬영한 신형 화포배치 사진을 직접 검증하는 임무를 맡았을 정도로 깊은 신뢰를 받았고 나중에는 첩보수집뿐 아니라 다른 정보원의 첩보를 대만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매번 푸저우에서 대만을 향하는 비행기에 탈 때마다 '만일 체포되더라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며 각오를 다지곤 했던 그의 운명은 이혼과 남편의 체포로 180도 바뀌게 됐다.

95년 성격 차이를 이유로 남편과 이혼을 한 그는 대만 복귀를 선택했고 정보원도 그만두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불행은 궁극적으로 그에게 행운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국가안전부는 그가 조직폭력배 두목의 여인들을 한 군항으로 데려가 사진을 찍었던 사건을 계기로 이들 부부 간첩의 동향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당시 군항을 배경을 사진을 찍었던 수상쩍은 행동이 상부까지 보고가 됐고 그때부터 국가안전부는 이들 부부의 존재를 주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들 부부의 경력을 물론 이혼 사실까지 샅샅이 파악하고 있었던 국가안전부는 96년 총통선거를 앞두고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대만 독립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촉발된 양안 위기 당시 군정국은 대륙의 모든 정보망을 동원해 해방군 군사훈련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던 상황에서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1년이 지난 뒤 대륙에서는 대대적인 대만 간첩 검거 열풍이 불었다.

중국은 대만 군정국 정보장교 등 20여명을 전격 체포했고 이들 가운데는 그의 전 남편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의 판결문에는 검거를 면한 그가 주모자로 지목돼 있었다.

대만 정보계의 한 인사에 따르면 그는 정보원을 그만두고 혼자서 외아들을 키우고 있다.

현재 보험모집인으로 변신한 그는 아주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반면 전 남편은 감옥에서 출옥한 뒤 동남아로 건너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phillif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