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실시된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재선에 성공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61) 대통령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딛고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이미 국제사회에 잘 알려져 있다.

1989년 이후 대선에 세 차례 도전했으나 번번이 초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보수 기득권층의 두터운 벽에 부딪쳐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난 2002년 실시된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해 마침내 3전 4기의 신화를 이룩했다.

올해 대선 승리로 룰라 대통령은 전임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조 전 대통령(1995~2002년)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연임에 성공한 기록을 남기게 됐다.

결선투표를 이틀 앞둔 지난 27일 61번째 생일을 맞아 밝힌 "가장 멋진 생일선물은 재선 성공"이라는 자신의 소원을 실제로 이룬 셈이다.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코 주 출신인 룰라는 5세 때 부모를 따라 최대 경제도시 상파울루 근교로 이주한 뒤 구두닦이로 가족의 생계를 돕는 등 어릴 때부터 가난을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5년 중퇴가 공식 학력의 전부인 탓에 다른 직업을 구할 수 없었던 룰라는 14세 때부터 상파울루 시 인근 상 베르나르도 도 캄포 지역의 한 금속업체에서 공장 근로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근로자로 일하며 기술학교 야간과정을 이수해 18세 때인 1963년 선반공 자격을 취득했으나 이듬해 사고로 왼쪽 손가락을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1969년에는 같은 공장 근로자였던 첫 부인이 산업재해의 하나인 결핵으로 사망하면서 노조활동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는 계기를 맞는다.

1975년 10만명의 노조원을 가진 금속노조 위원장에 선출된 룰라는 이후 잇따른 파업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개혁 성향의 지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 상파울루 시 인근 3개 지역 노조가 참여한 브라질 사상 최대 규모의 파업을 주도하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된다.

룰라는 10만여명이 참여한 이 파업 과정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잠시 구속되기도 했으나 곧 풀려났으며, 이후 브라질 사회를 진정으로 개혁할 수 있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1980년 초 산별노조와 좌파 지식인들을 규합해 노동자당(PT)을 창당한 룰라는 1983년 중앙단일노조(CUT)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CUT는 현재 브라질 최대의 노조조직으로 성장했다.

1984년부터는 당시 민주화운동의 대명사였던 '디레타스 자'(Diretas ja)로 불리는 대통령 직선제 운동을 전개했다.

이어 1986년 연방하원의원에 출마해 최다득표인 65만표로 당선되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하는 한편 PT가 브라질 정치권에서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30년만에 처음으로 1989년 실시된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한 룰라는 페르난도 콜로르 데 멜로 후보에게 분패했으며, 1994년과 1998년 대선에서는 카르도조 후보에게 연달아 패배하면서 보수층의 높은 장벽을 절감해야 했다.

'부드러운 룰라'라는 이미지를 내걸고 출마한 2002년 대선에서 룰라는 기업인 출신의 조제 알렌카르를 러닝메이트로 삼아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성공하면서 결선투표에서 61.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올리며 당선됐다.

2003년 초 실용좌파 정권을 출범시킨 룰라 대통령은 '보수주의자보다 더 보수적인' '뜻밖의 보수' 정책으로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끄는가 하면, 빈곤층 해소를 위한 분배정책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국내외의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잇따라 터져나온 집권당 비리 스캔들로 인해 한 때 대통령 탄핵발의까지 거론되는 등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으며, 이 같은 위기는 결국 지난 1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서 당선을 확정짓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기는 했으나 룰라 대통령의 결선투표 승리는 전통적인 지지기반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각 지역을 돌며 벌인 유세 현장에서는 저소득층과 빈곤층 서민들이 룰라 대통령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할 수 있었다.

잇단 비리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서민 유권자들은 부족하나마 자신들의 먹거리를 해결해주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룰라 대통령에 대해 여전히 지지를 보냈으며, 이것이 재선의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통신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