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가 메르세데스-벤츠를 누르고 고급차 시장에서 1위 자리에 오를 전망이다. 1993년 이후 12년 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 품질문제,인력 구조조정,경영진 교체 등으로 힘겨운 한해를 보낸 독일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가 '세계 최고 고급차'라는 타이틀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벤츠는 올 들어 11월까지 전 세계에서 96만1000여대를 팔았다. BMW 판매량은 102만대를 기록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EAMA)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지역에 새로 등록된 BMW는 작년 동기대비 9.5% 늘어났고 벤츠는 3.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규 차량 등록대수는 자동차 판매실적과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올 11월까지 벤츠의 판매는 0.9% 줄었으나 BMW는 2% 늘었다. 두 회사는 세계 고급차 시장을 양분하면서 치열한 판매경쟁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렉서스 브랜드가 미국 시장의 성공을 발판으로 유럽 고급차 시장도 공략하고 있어 판매 전쟁은 격화되고 있다. 렉서스 판매량은 40만대에 못 미치지만 도요타가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BMW와 벤츠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 경기 호조로 고급차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것도 시장쟁탈전의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벤츠의 뒷걸음질은 경영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나타난 데 따른 결과이다. 미국의 소비자잡지 컨슈머리포트는 연초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차'에 벤츠의 중형 세단(E클래스) 등을 포함시키는 등 벤츠의 품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스마트'라는 소형차 사업에서도 상당한 손실을 보면서 이익이 대폭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 8500명을 감원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엑카르트 코르데스 벤츠사업부 CEO가 1년도 채 안돼 물러나는 등 경영진의 잦은 교체도 문제가 되고 있다. 반면 BMW는 날렵하고 경쾌한 스타일과 뛰어나고 안전한 성능으로 비즈니스맨 변호사 건축가 디자이너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공략,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벤츠는 중후한 이미지인 데 반해 BMW는 역동과 감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벤츠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면서 벤츠의 자존심도 상당히 타격받을 전망이다. 벤츠는 항상 '세계 1위 고급차'란 수식어를 강조해왔다. 수많은 벤츠 택시가 독일 곳곳을 누빌 정도로 독일에선 BMW보다 벤츠가 독일 대표 브랜드로 인식돼왔다. 이런 경쟁우위를 살려나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 대변인은 벤츠 판매가 올해 부진하긴 했지만 최근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잠깐 1위 자리를 내주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고 평가절하했다. 벤츠는 올해 출시한 4개 신형 모델과 내년 1월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선보일 S클래스 세단이 판매 확대에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