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 일로로 치닫던 중ㆍ일 관계가 일단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지난 23일 밤 자카르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중ㆍ일 우호가 중요하다"며 일단 양국관계를 정상화하는 모양새를 취했던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말 그대로 '봉합'을 위한 것이었을 뿐 갈등이 다시 불거질 소지를 안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번 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단과 정확한 역사 인식을 요구했던 반면 고이즈미 총리도 중국 내 폭력적인 반일시위 방지를 요구,현실 인식에 대한 차이가 크다는 점이 다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올 들어 역사 교과서와 영토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했던 중ㆍ일,한ㆍ일간 갈등은 동아시아 3개국간 화해와 협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중ㆍ일 관계만 해도 지난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일본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되는 등 서로간의 경제적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식민지 역사'라는 변수는 양국간 친선관계를 언제라도 긴장관계로 뒤엎어버릴 수 있는 폭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 이후 개선돼 왔던 한ㆍ일 관계도 올해 들어서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한류 붐'을 타고 화해 무드가 고조됐던 양국 관계는 독도 문제와 교과서 문제를 계기로 급랭,연말 타결을 목표로 했던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6개월째 실무회의 한번 열리지 못할 만큼 악화된 상태다. 한ㆍ중ㆍ일 3국 지도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아시아의 발전과 세계 평화를 위한 '아시아 공동체' 창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구호만 있을 뿐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갈등의 골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동아시아 3국은 '구원(舊怨)'의 뿌리가 깊은 만큼 정치적 화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각국 정치 지도자는 무엇보다 상대국 국민의 '내셔널리즘'을 자극,갈등을 조장하는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