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 선출에 이변은 없었다. 보수적 성향의 라칭어 추기경이 '베네딕토 16세'가 된 것은 바티칸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측통들이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이상 보다는 현실이 앞섰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콘클라베를 앞두고 한껏 부풀어올랐던 제3세계 출신, 흑인 교황에 대한 기대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추기경단의 분포를 보면 근 40%가 제3세계 출신이지만 성향을 보자면 보수파가 압도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절대 다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 시절에 서임된 이들이어서 그 성향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극단적이지 않은 보수주의의 대변자로서 라칭어 추기경은 일단 추기경단에게 적격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대교황으로 불리는 요한 바오로 2세의 보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난 인물을 택할 가능성은 애당초 희박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진보파들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고 해방신학, 낙태, 피임, 동성애, 인간 복제, 여성 사제서품에 분명히 반대해왔다. 라칭어 추기경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속주의와 상대주의, 종교 다원주의에도 경계감을 갖고 있었다. 유럽연합(EU)의 헌법에서 신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것을 생전에 요한 바오로 2세는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라칭어 추기경이 콘클라베가 개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은 것은 가톨릭 교회가 세속주의와 타종교로터 오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라칭어 추기경의 신념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라칭어 추기경은 이런 점외에도 여러모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그는 큰클라베 첫날 회의에서 이미 40-50표를 얻고 있었다는 관측이 나온 것은 다른 후보와 차별화된 몇가지 장점에서 기인한다. 라칭어 추기경이 가장 유리했던 것은 '대전(大殿)'에 가장 가깝게 있었던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재위 시절 '부교황'이라거나 '요한 바오로 3세' 등으로 불릴 만큼 실세였다. 지난 수년간 고령과 건강 악화로 요한 바오로 2세의 존재감이 차츰 퇴색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위상을 날로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 일부에서는 진작부터 라칭어 추기경을 사실상의 교황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2인자 자리를 유지한 것은 전임 교황의 신임이 두터운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40여 년 전 개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참여하면서부터 친분을 쌓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즉위 후 몇년이 지나지 않은 지난 1981년 라칭어 추기경에 가톨릭 교리의 수호라는 중책을 맡겼다. 전임 교황의 믿음대로 그는 진보적 신앙관과 세속주의로부터 가톨릭 교리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비타협적 노선을 견지해왔다. 진보세력에게는 라칭어 추기경의 이같은 태도가 완고한 '교조주의'로 비쳐지고 는 것이 사실. 이 때문에 독일 탱크와 맹견에 비유해 '판처카르디날'이나 '신의 로트와일러'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라칭어 추기경은 '후광'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비타협적인 성향 때문에 적들도 만들었겠지만 친화력을 통해 친구를 보다 많이 만들어두었다는 것이 바티칸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풍부한 경험도 그의 장점에 속한다. 라칭어 추기경은 실제로 2인자에 걸맞은 지도력과 행정 능력을 보여주었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 다른 국가 정상들과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이 교황이 갖춰야할 덕목이라면 라칭어 추기경이 단연 우위라고 볼 수 있다. 교황청에 오래 머문 만큼 이탈리아어 구사 능력도 뛰어나다. 이탈리아 언론들은 자국 출신이 라칭어 후보와 경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동구권에 넘어간 교황권이 다시 이탈리아에 넘어가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추기경들이 적지 않았던 것도 라칭어 추기경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교황을 전담 취재하는 기자들, 즉 '바티카니스티'에 따르면 이탈리아 출신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이 진보파로부터 지지를 얻었으나 중풍을 앓고 있다는 점도 라칭어 추기경에게는 플러스가 됐을지 모른다. 라칭어 추기경의 나이도 또다른 플러스 요인이 됐을지 모른다. 라칭어 추기경이 비교적 고령이어서 재위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 추기경들은 젊은 후보를 선택해 2-30년을 재위할 교황을 뽑기보다는 머지 않아 새 교황을 선택하는 수고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계산을 했을지 모른다. (제네바=연합뉴스) 문정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