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검찰이 14일(현지시간) 유엔의 석유ㆍ식량 프로그램 비리와 관련, 박동선씨 등 4명을 기소해 미 검찰의 칼날이 국제기구인 유엔으로 향하는게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뉴욕 맨해튼 연방검찰이 관련자들의 비리 혐의를 공개한 이날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995년 4월 14일 석유ㆍ식량 프로그램을 실시키로 결의한 뒤 정확히 10년이 되는 날이다. 검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동선 스캔들'의 주인공 박씨는 1993년 이라크를 위해 활동하던 또 다른 로비스트 'CW-1'과 '유엔 고위관계자'의 만남을 여러차례 주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씨가 이런 만남을 주선한 것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이라크가 식량과 의약품 등 인도적 물자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정도만이라도 석유를 팔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로비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이런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라크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유엔 석유ㆍ식량 프로그램 하에서 박씨가 중재해 마련한 조건으로 막대한 석유를 팔았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미국의 석유업자 데이비드 찰머스와 영국인 존 어빙 등은 이라크로부터 구입하는 석유가격을 조정, 정상적 거래 보다 훨씬 많은 차익을 남기면서 그 일부를 사담 후세인 등 이라크 관리들에게 뇌물로 지불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검찰이 '유엔 고위관계자'가 석유ㆍ식량 프로그램의 채택 과정에서부터 박씨의 로비를 받았다는 사실을 명시한 점이다. 검찰은 로비대상자에 대해 '유엔 고위관계자'라고만 밝혔을 뿐 그의 신분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가 현재 유엔에 재직중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유엔 주변에서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유엔 고위관계자'를 직접 조사할 가능성이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인물이 외교관 신분이냐, 아니면 유엔 사무처가 채용한 유엔 직원 신분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검찰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를 조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외교관 신분이어서 면책특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또 검찰이 세계평화의 보루인 유엔에 칼을 댄다는 비판여론을 우려, 직접 조사하지는 않더라도 '고위 관계자'의 이름을 공개하거나 흘리기만 해도 유엔은 엄청난 타격을 입는게 물론이다. 그러나 검찰이 어떤 형태로든 유엔에 대한 흠집내기를 시도할 경우 이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유엔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반발도 사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욕 검찰의 발표에 대해 프레드 에커드 유엔 대변인은 "유엔은 누구든 범죄혐의가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고 논평하고 "미국 검찰당국이 유엔과 접촉한 바 없으며, 오늘 기소된 사람중에 유엔 관리도 없다"고 말했다. 한편,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이날 유엔본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후세인이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은 석유ㆍ식량 프로그램 밖에서 요르단과 터키에 석유를 밀수출해 번 것"이라면서 감시를 소홀히 한 미국과 영국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아난 총장은 "미국과 영국같은 나라만이 이라크의 밀수출을 저지할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터키와 요르단이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이 눈을 감아주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이래운 특파원 lrw@yna.co.kr